정치권과 시민단체 또한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서는 기존 법안의 수정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정기국회 기간 내내 양측간 치열한 기 싸움이 이어질 전망이다.
◆“상법개정안, 경제민주화 역행”
경제계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크게 △이사와 감사위원의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집행임원 도입 △다중대표소송제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 5개로 요약된다.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의 경영 방식을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내용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경제계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획일화하는 한편 외국계 펀드나 경쟁기업들에 의해 경영권이 농락당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감사위원 선임때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과 집중투표제 등 기업지배구조를 인위적으로 규제하는 조항은 감사위원과 이사 선임 등에 대한 규제강화는 주주권의 근간을 해치고, 경영권을 위협해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해외투기펀드 등에 의한 인수·합병(M&A) 위협에 노출돼 기업이 본연의 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만들고 투자 대신 경영권 방어에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지난달 28일 박 대통령은 10대 그룹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안의 수정을 시사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경제계는 기업들의 입장이 더 반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재벌개혁을 외치는 시민단체뿐 아니라 야권, 심지어 여권에서도 “상법개정안 후퇴는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한경연 주최로 열린 ‘상법개정안의 쟁점과 정책방향’ 정책토론회에서 “정부는 경제민주화 정책의 하나로 상법개정안을 제안했지만 경제민주화나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오히려 개정안을 철회해야 한다”며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통상임금·근로시간 단축, “투자·생산 위축”
통상임금은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게도 엄청난 부담감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 국회에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고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제기돼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 기준을 바꿀 경우 기업들은 약 38조원의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재원이 통상임금의 소급지급에 허비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는 5일 열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공개변론이 통상임금 문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인데, 전국 71개 회장단은 3일 대법원에 통상임금에 대한 적정한 결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경제계는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주당 최대 근로가능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들어 경영과 생산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근로시간을 획일적, 인위적으로 단축할 경우 기업의 조업차질과 인건비부담증가가 예상되며, 지급임금 감소에 따른 노사갈등이 우려 된다는 것이다.
경제계는 “근로시간의 제도적 단축은 개별기업이 각자의 현실에 맞게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반드시 법안이 관철되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 문제를 다루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대표적 ‘강성상임위’로 꼽히고 있다는 점이 재계로서는 불안 요소다.
◆“순환출자금지, 경영권 방어에 돈 낭비”
공정거래법 개정안 세부항목 중에서는 대기업 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및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 규제 등 규제를 소급하는 내용이 뼈 아프다.
경제계는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기업투명성은 높아지겠지만 그 대신 경영권 방어에 투자재원을 허비하게 되므로 기업투자와 일자리 창출, 사회적 책임 이행 등의 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행 은행에만 적용하고 있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보험 및 카드사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제정안은 이미 6월 임시국회 때 제출돼 법안심사 소위에서 논의됐지만 재계의 반발이 워낙 거세 결론을 내지 못하고 9월 정기국회로 넘어온 상태다. 보험 및 카드사는 은행과 달리 대기업 소유가 많기 때문에 정부가 대주주자격을 정기적으로 심사하는 것은 과도한 연대책임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경제계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
또한 비금융계열사 지분에 대한 대기업 금융계열사들의 의결권 제한(현행 15%→ 2017년 5%) 조항이 입법화되면 삼성계열의 삼성생명, 한화계열의 한화생명 등은 계열사 의결권 행사에 큰 제약이 생겨 적대적 M&A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남양유업 사태로 제정된 대리점거래 공정화법 제정안도 국회 법안심사 소위에 계류 중이다. 경제계는 “본사와 대리점간 거래를 공정화할 목적으로 불공정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과 매출액의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것은 이중처벌의 소지가 있으며, 대리점주들에게 단체 구성 및 협의권을 허용하는 것은 담합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일감몰아주기 과세대상서 중소·중견기업 제외해야
이밖에 경제계는 △일감몰아주기 과세대상에서 중소·중견기업 제외(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시내하도급 규제 지양(사내하도급 근로자보호법 제정안) △화학물질 등록의무 일부 완화(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 개정안) △유해물질 누출관련 처벌 조정(유해화학물질 관리법 개정안) △외국인 합작투자시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의무 지분율 50% 완화(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중소·중견기업 가업상속 지원 확대(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 △법인세율 인상 반대(법인세법 개정안) △일자리 영향평가제도 도입(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 등에 대한 관련 법 제·개정안의 완화 또는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이미 상반기에 통과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으로도 기업의 숨통을 쥐기에는 충분하다”며 “더 이상의 압박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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