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진오 기자=세상을 살면서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중독성이 강하고 매력적인 권력의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바로 여기에 ‘퇴장의 미학(美學)’이 있다. 아름다운 퇴장이 화려한 등장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이유다.
이달 27일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대학(경희대학교)강단으로 돌아가는 황주호(사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장을 지난 12일 제주시 조천의 한 식당에서 마주했다.
황 원장은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며 “엑셀패달을 계속 밟으면 마지막에 발을 떼는 것이 정석이라 미련은 없다”며 사의 배경을 밝혔다. 일각에서 유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스스로 공모에 참여하지 않았다. 에너지기술연구원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 만큼 뒤돌아 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2010년 9월 취임한 황 원장은 재임기간 특유의 친화력과 투명성이 강조된 수평적 업무처리방식으로 조직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무엇보다 효율과 혁신을 중시해 최일선 실무진과 학계, 지역 기업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강한 추진력으로 에너지기술연구원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 원장은 “일부 연구원들이 국익보다는 개개인이 원하는, 취향에 맞는 과제에 더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어 마찰이 생길 때가 있다. 후배들의 의지와 창의성을 꺾지 않는 선에서 제대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부분이 가장 아쉽다”며 “그러나 실험실·연구공간 효율화를 적극 추진해 연구 운영의 질을 높이고 신뢰성을 제고한 것은 성과”라고 회고했다.
또한 “임기 3년간 (인생)공부를 많이 했다. 우리나라처럼 기관장들에게 큰 권한을 주는 곳도 없을 것”이라면서 “조직이 안되거나 못하면 다 기관장 탓이다. 남 탓할 일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직 안팎의 일로 고민할 때 김종훈 한미글로벌(옛 한미파슨스) 회장의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와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의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라는 두 권의 책을 읽고 감명받아 용기를 얻었다”며“최근 손양훈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취임했을 때 힘이 되라고 이 책들을 보내줬다”고 소개했다.
황 원장은 특히 “흔히 신재생 에너지와 원자력을 대비되거나 대립되는 개념으로 여기지만 이들 모두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아 화석연료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에너지”라며“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에 모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윈-윈 정책이 긴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신임 사장으로 유력한 조석 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에 대해서는 "같이 일을 많이 해서 알고 있다. 워낙 뛰어난 분이라 (한수원의)경영을 잘 하실 것으로 기대된다"며 "다만 급하게만 서두르지 않으면 만사 형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 원장은 퇴임 전날 임원 면접을 끝으로 정식 업무를 마감한다. 이미 지난 학기부터 친정집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의 대학원에서 강의도 시작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출연연에 다시 컴백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누가 나 같은 사람한테 또다시 중책을 맡기겠는가"라면서도 "건실한 기업에서 러브콜이 온다면 한 번 생각은 해보지 않을까"라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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