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조차도 "걸면 걸리는 범죄"라고 부르는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를 위반하면' 모두 성립된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심지어 아무 일을 안 해도 배임죄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배임죄의 적용 범위가 너무나 광범위하니 법원의 판결도 구체적인 처벌 대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여론이 더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수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이 김 회장 배임행위의 일부 유죄와 무죄 부분을 원심과 달리 판단한 것 또한 결국 개념이 구체적이지 않다보니 법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배임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재판부는 "이미 지급보증된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추가로 돈을 빌리는 데 계열사가 다시 지급보증을 제공했다면 후행 지급보증은 배임행위가 되지 않는다"며 원심의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또 "부동산 저가 매도로 인한 배임 여부가 문제가 되는 이상 부동산과 관련한 채무이전 행위나 이를 자산으로 가진 회사의 인수·합병 등도 별도의 배임에 해당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며 거꾸로 무죄 판결을 파기하기도 했다.
모호한 개념 때문에 다수 기업경영자들은 재판에 내몰릴 부작용이 크다. 검찰이 적극 기소하기 위해 배임죄를 확대 적용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재계는 새 정부 들어 여론을 주도해온 경제민주화나 갑의 횡포 등의 분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배임죄를 통해 재판에 휘말릴 대기업 총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러한 배임죄는 기업가의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혹시 모르는 경영상의 변화로 인해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임원직들 모두 죄인이 될 수밖에 없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일 이외에는 손을 댈 수 없게 된다. 이는 시장환경에 대한 빠른 대응보다는 안정 위주의 보수적인 경영체제를 선호하게 만들어 자칫 투자 위축, 신사업 진출 실패 등 경영 차질을 야기할 수 있다.
이에 재계는 물론 학계와 법조계에서도 현재의 배임죄를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인들의 경영활동 자율을 보장해주기 위해 상법 개정을 통해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문으로 도입하는 한편, 상법상 특별배임죄에는 '다만, 경영 판단의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단서를 삽입해야 한다"며 "또한 경영 판단으로서 민사적으로 손해배상 의무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 형사처벌도 면제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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