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지금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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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9-2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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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홍한울 워싱턴 특파원= 5년 전 일이다. 다급한 목소리의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새벽에 경찰이 집에 들어와 자고 있던 남편을 붙잡아 갔다는 것이다. 영어가 서툴렀던 이 여성은 영문도 모른채 세 아이와 벌벌 떨어야 했고 날이 밝자 하소연 할 곳을 찾다 기자에게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취재 결과 남편을 잡아간 사람들은 경찰이 아니라 미국 이민단속국 수사관이었다. 그리고 여성의 남편은 목사 신분으로 미국에 들어왔지만 비자 기간을 넘기고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 결국 불법체류자, 즉 불법이민자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집안의 가장이 잡혀 간데다 갖고 있던 돈도 다 떨어져, 두 아이의 학용품과 막내 갓난아기의 분유와 기저귀값은 물론 끼니 걱정을 해야 할 형편이었다. 다행히도 지역 언론에 이들의 딱한 사정이 알려지자 각계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게다가 지역의 인권 변호사가 나선 덕분에 남편은 추방 직전 수감돼 있는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이들 가족은 일정 기간 미국에 머물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한 달쯤 뒤에 변호사로부터 황당환 전화를 받았다. 지역 한인사회의 관심과 격려, 그리고 도움으로 힘들게 구치소에서 나왔던 그 목사가 전화를 걸어 ‘도움에 감사드린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불체자 신분이라도 좋으니 미국에 남아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불법이민자로 숨어 살다가 어쩌다 있는 불체자 구제 정책이 발표되면 그 혜택을 보겠다는 심사였던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일반인들이 바른 삶을 살아 가도록 이끌어야 할 목회자마저 이민단속국의 눈길을 피해 몰래 숨어 살게 만든 것일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미주 한인사회는 말 그대로 ‘풍요’ 그 자체였다. 심지어 ‘김 씨네, 이 씨네 집 개들은 100불짜리 지폐를 물고 다니더라’는 우스갯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인 특유의 성실함 덕분에 만든 돈을 만지게된 한인사회는 한 가정이 집 2, 3채 정도 갖게 되고,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 친척들까지 불러 들일 정도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대표적인 소수민족으로 한인사회는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은 달라졌다.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현금유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자 대부분 중소업체를 운영하던 한인사회는 직격탄을 맡게 되었다. 주택값 상승으로 인한 고수익을 기대했던 한인들은 부랴 부랴 집을 내 놓기 바빠졌고, 모기지를 갚지 못하게 된 한인들은 숏세일과 포클로저를 선택해야 됐으며 문을 닫는 한인상점도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다. 워싱턴 지역 노숙자 무리 속에 한인들도 눈에 띄었다.

예전에는 ‘왜 미국에 오려고 하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구치소에서 나온 목사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불체자로 계속 살겠다고 전화한 지 5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더 이상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어졌다.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은 ‘자녀 교육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국으로의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 마음 속에는 자녀 교육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생각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심한 한국보다 경쟁도 덜 심하고 기회더 더 많은 미국에서 자녀를 성공시켜 대리만족을 얻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미국에서 예전과 같은 ‘아메리칸 드림’을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연방공무원의 동결된 봉급은 좀처럼 풀릴 기미가 안 보이는데다, 정치권의 갈등으로 여차하면 연방 정부가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보도가 연일 흘러 나오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더군다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역점 추진하고 있는 의료보험 개혁안 시행으로 직원들의 의료보험료를 떠안아야 하는 소규모 한인업주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국이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다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사정이 비관적으로 보인다 해도 한인사회에 희망은 있다. 근면성을 바탕으로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분위기가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한인들은 힘들수록 큰 힘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다시 살아날 그날을 희망하며 어려움에 처한 동포의 어깨를 감싸고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 건넬 때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이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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