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승훈 기자=서울의 고층건축물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지적(본보 9월30일자 19면 보도)과 관련, 소방당국에서 고층이 화염에 휩싸였을 때 각종 화재진압 장비가 무용지물이란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2010년 부산 해운대의 지상 38층짜리 주상복합건물에서 불이 난 대형 피해에도 불구, 단순히 현황 파악에만 그친 소방당국의 안일한 대응이 향후 도마위에 오를 전망이다.
1일 아주경제신문이 서울시소방재난본부로부터 입수한 '화재대응 매뉴얼'을 보면, 고층건축물은 화재 취약성과 함께 다수의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매뉴얼은 강남구의 A아파트를 대상으로 한다. 35층에 연면적은 310만2809㎡ 규모, 5개동으로 이뤄졌다. 전형적인 (고)초고층건축물에 해당된다.
매뉴얼을 보면 관할 소방서나 안전센터와는 2000m 안팎 위치에 자리하고 소방차의 접근이 용이하다. 전 세대에 스프링쿨러(살수 장치)가 설치, 자체 화재방어 기능을 갖췄다.
여기서 아파트 내 소방차 진입은 가능하지만 높은층에 특수차량(굴절·고가차) 활용이 힘들다는 점을 장애요인으로 들었다.
다시 말해 서울시내 각급 소방서가 보유한 평균 52m급(15~16층) 고가사다리차로는 불길을 진압하기 어렵다고 풀이된다. 더욱이 단지 내 조경과 구조물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다리차는 물론 안전매트 등을 배치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송파구에 단 1대가 있는 55m급(18층 규모) 사다리차도 역부족인 셈이다. 30층 내외에서 불이 나면 소방장비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메뉴얼에서는 각 세대의 스프링쿨러가 초기 소화에 실패했을 경우 대형화재로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만일 저층부에서 상층으로의 불길과 연기 확산이 순식간에 이뤄질 땐 신속한 대피가 어려워 다수의 인명피해를 예상했다.
그러면서 화재진압 및 인명구조 대책으로 △각 세대원에 소화기, 옥내소화전 등 진압장비 사용요령 숙달 △지속적 소방훈련 실시 △진압대원들에 초기 대응능력 배양 △신속한 구조대 및 헬기 투입 △건물 옥내 피난계으로 대피 유도 등을 내놨다.
그야말로 건물 자체 (고정)소화설비나 거주자의 대응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서울시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고층에서 불이나면 지상 소방차의 송수장비는 활용이 어렵다. 즉 발화나 화세 현장에 소방대원이 직접 투입돼 인명구조를 하거나 불을 끄는 게 최우선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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