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경찰서 홍혜숙
이준익 감독의 영화‘소원’이 폭발적인 사회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의 소재 자체가 아동 성폭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소원은 열 살. 어렵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자신에게 무지막지한 범죄를 저지른 아저씨를 여러 성폭행 범죄자 목록 중 찾아내 지목한다.
하지만 최종판결에서 성폭행범은 술을 마셔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항변하고 법원은 술 냄새가 났다는 소원의 증언을 바탕으로 피고에게 징역 10년에 가까운 형량을 선고한다.
그저 우산을 빌려달라는 어른의 부탁에 함께 씌워주려 했다가 평생 안고 가야할 몹쓸 기억과 평생 인공 항문을 달고 살아야 하는 소원에게는 악몽 같은 일이 끝나지 않은 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자던 필자의 생각은 딸을 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 키울까, 아들이 낫겠다 하는 두서없는 생각이 앞선다.
특히 지구대에 사전지문등록을 하러 오는 어린 아이들을 볼 때면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한데 이렇게 어리고 연약한 아이들에게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성폭행범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부르르 떨리고 사형을 내려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봤다. 그러면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전자팔찌도, 화학적거세도, 특별법제정도 자라나는 눈물로 얼룩진 우리 예쁜 아가들을 생각하면 백만 번 천만 번 이해되는 주장들이다.
가해자 그 놈들은 ‘나쁜 놈’이 맞다. 그러나 그렇게 가해자들에게 ‘저 나쁜 놈’이라고 욕을 하는 것보다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피해 아동을 안아주는 일이다. 피해 아동들이 더도 말고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중·고등학생이, 취업을 고민하는 대학생이, 가끔 상사도 욕하는 직장인이, 그저‘평범’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자는 말이다.
단순히 우리의 ‘불쌍해’라는 시선 속에는 이미 그 아이의 인생은 이제 다 망했다는 가정이 깔려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성폭행당한 아동은 성폭행 이후 따뜻한 보다듬과 사랑,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속삭임만 있으면 충분히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다.
물론 지금 우리는 성폭력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자, 처벌을 강화하자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아직도 사람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들을 감싸 안고 토닥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 아이들에 대한 동정의 시선을 버리고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꿈나무’로 똑같이 봐주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