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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유래와 우리마을 유래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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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0-2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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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재미있습니다 역사공부하세요-

아주경제 윤재흥 기자= 현재의 익산시는 1995년 5월 10일 ‘도농복합 형태의 시설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당시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되면서 형성되었다.

하지만 역사적, 문화적으로 익산시는 그보다 오랜 예전부터 소력지현(所力只縣), 금마저(金馬渚), 감물아현(甘勿阿縣), 익주(益州) 등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해왔다.

익산은 금강과 만경강을 끼고 있는 수로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광활한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사람이 살기 적합해 일찍부터 화려한 문화가 발달했다.

익산지역은 청동기 문화를 꽃피운 마한의 맹주 목지국이 위치한 곳으로 전해지며 또한 백제 무왕의 천도지로 알려지는 등 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익산이기에 이름만으로도 그 마을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지명들이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지금 익산 구도심 지역은 백제시대 소력지현(所力只縣)으로 불렸다. 소력지(所力只)란 질펀한 물이 항상 고여 있는 소 늪지, 즉 沼瀝池(소력지)를 쉬운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당시 이 지역이 습지와 늪이 많은 곳이었다는 것을 지명을 통해 알 수 있다.

또 지금은 사라진 이리(裡理)라는 명칭은 1931년 익산읍이 이리읍으로 바뀌며 처음 등장해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할 때까지 그 지명이 이어져왔다. 여기에서 ‘이리’라는 명칭은 갈대가 우거진 속에 멀리 보이는 마을이라는 뜻의 속마을 ‘솝니’가 ‘솜리’로 불리다가 한문으로 의역화해 이리(裡理)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외에도 ‘큰 등성이’라는 의미의 ‘한등이’가 변해 된 이름 ‘황등(黃登)’, ‘곰개 나루’의 ‘웅포(熊浦)’ 등 익산의 지명에는 그 마을의 역사와 유래를 알 수 있는 이름들이 가득 담겨있다.

현재 익산시는 1읍(함열읍), 14면(용안면, 용동면, 성당면, 웅포면, 함라면, 황등면, 삼기면, 오산면, 춘포면, 왕궁면, 금마면, 여산면, 낭산면, 망성면), 14동(중앙동, 평화동, 인화동, 동산동, 마동, 남중동, 모현동, 송학동, 신동, 영등1동, 영등2동, 어양동, 팔봉동, 삼성동)의 행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익산의 29개 읍면동에는 각각 숨겨진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앞으로 매주 연재를 통해 우리 고장의 이름 속에 숨겨진 마을이야기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아주경제 윤재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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