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준 기자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간은 계속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아무리 창피했거나 수치스러운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기억이 남아 있더라도 당시 받았던 정신적 고통은 현저히 줄어든다.
망각하지 않는 인간은 괴롭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잊어줬으면 하는 많은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이처럼 인간은 끝없이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망각의 기능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점점 퇴화되고 있다.
무심코 올린 사진이나 댓글은 기억에서는 지워질지언정 인터넷 업체의 데이터베이스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한 과거의 흔적은 종종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들의 발목을 잡는다.
연예인에게는 지우고 싶은 과거의 사진, 정치인에게는 무심코 내뱉은 예전의 한 마디 말 등이 온라인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인에게까지 퍼졌다.
스마트폰으로 누가 언제 어디서 찍힐지 모르는 세상에서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인터넷에 한 번 잘못 올라가기라도 하면 소위 '신상털기'가 시작된다.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사이버보안연구단이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이용자 계정 934만개를 대상으로 개인정보 노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름과 출신 고교·대학 등의 정보를 알고 있을 때 특정인을 구분할 수 있는 계정이 10개 중 4개가 넘었다.
또 이름과 출신 고교 2개 정보만 있어도 34.4%의 계정을 특정인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정감사에서 이러한 인터넷 상에서의 잊혀질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학생 10명 중 8명이 인터넷 상에서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입법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물론 잊혀질 권리가 무조건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익명인 점을 악용한 명예훼손이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는 걸러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생활 침해나 허위사실 유포 등 특정인에 대한 마녀 사냥이 빈번한 인터넷에서의 잊혀질 권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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