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박재홍·신희강 기자 = 30대 그룹이 정부의 경제활성화 정책에 부응코자 당초 약속한 투자·고용계획을 달성키로 했다.
그러면서 이는 사실상 '압박'에 가까운 정부의 요청에 대해 경제계가 내놓을 수 있는 최후의 카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제계는 투자·고용 확대의 선결 요건으로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함께 국회를 중심으로 심화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추진을 중단하고 경제활성화 입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했다.
즉, 경제계는 약속과 의무를 이행하겠으니 정부와 국회도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구속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긴급 투자·고용 간담회'에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 기획재정부·환경부·국토교통부 등 유관부처 차관과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 30대 그룹 기획·총괄 사장단 및 전국경제인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 부회장단이 참석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윤 장관이 30대 그룹 사장단을 만난 것은 새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4월 이후 두 번째다.
이날 핵심 주제는 30대 그룹이 당초 목표로 한 투자·고용계획의 달성 전망이었다. 윤 장관은 "모처럼 맞이한 경기회복 모멘텀을 지속적 성장세로 이끌어야 한다"며 "올해 30대 그룹이 계획한 155조원 투자와 14만명 고용계획이 100% 달성될 수 있도록 남은 4분기에 적극적으로 노력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참석기업 사장 대부분은 당초 목표한 투자와 고용을 차질 없이 이행 중이고, 일부 대기업은 오히려 계획을 넘어서는 투자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부 기업의 투자가 미진한 이유는 4분기에 투자가 몰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므로 일부의 우려와 달리 투자계획 달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의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이 계획을 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답했다.
간담회에 배석한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30대 그룹의 투자계획은 연중 조정이 크지 않지만 90~110% 정도 계획에 유연성이 있어 재작년 110%였는데, 작년은 90%의 달성률을 보였다"며 "올해의 경우 상반기 진척률이 낮았던 해였는데, 원인을 보면 세계 경제회복이 생각보다 더뎠고, 특정 그룹의 경우 대규모 투자가 4분기 후반기에 몰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하반기 투자개선의 모습이 있는 것 같다. 3분기 GDP 발표에서 전 분기 대비 설비투자가 처음으로 증가세를 보인 것이 그 예"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투자·고용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한 만큼, 앞으로 남은 기간 중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할 공은 정부에게 넘어갔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정부와 국회는 대대적인 경제민주화 법안 입법을 추진하고, 기업에 대한 사정에 가까운 압박을 이어가면서 기업 경영활동의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켰다.
이날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올 상반기 입법화된 경제민주화 법안이 현재 입법을 준비 중인 경제활성화법보다 더 우려스럽다는 입장을 전한 이유도 과도한 규제 아래에서는 원칙적인 기업 활동을 추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같은 호텔에서 열린 서울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박용만 대한·서울상의 회장도 "국내에서 경제민주화나 각종 기업규제 법안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우려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기업들은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경영현장의 애로사항을 해소해줄 것을 건의했고, 산업부·기재부·환경부·국토부·공정위 등 각 정부 부처는 기업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대안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어느 정도 기업의 요청에 부응하는 선물을 준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들어 국가경제 곳곳에서 회복의 기미가 엿보이면서 이를 터닝포인트로 삼아 부흥을 시도하려고 하지만, 아직도 거센 국회와 시민단체들의 경제민주화 요구에 제대로 된 지원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부처 내에서도 기업정책과 관련한 시각이 엇갈려 범정부 차원의 산업계 지원정책 추진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점도 고민거리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서 실천을 약속한 만큼 정부도 국회와 시민단체를 설득시켜 기업활동을 돕는 규제완화에 대한 성의를 좀 더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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