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불국설경 800*252cm.2013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11월 어느 쌀쌀한 가을밤이었어요. 달이 휘엉청 떠있는 마당을 걷고 있자니 마치 나는 신라의 왕자가 된 기분이었죠.하하~"
수묵화가 소산(小山) 박대성(68)은 1995년 불국사에서의 첫날 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화장실을 7,8회나 왔다갔다. 너무 흥분하면 그럴수 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 밤 이후 소산은 '불국사 작가'가 됐다. 운명이었을까. '불국사행'은 벼락처럼 찾아왔다.
90년대 가장 잘 팔리는 인기작가로 구가하며 남부럽지 않은 시절, "그림 주문과 돈과 연관되는 작업을 끊고 나를 찾고 싶어 온 미국"이었다. "그런데 다시 한국이라니…." 몇년간 체류하려고 작정했던 계획과는 달리 1년만에 보따리를 쌌다.
그렇게 찾아 들어간 곳이 경주 불국사다. 무조건 주지스님을 찾아 "불국사를 그리고 싶다. 그림그릴 암자하나 내달라"고 했다. 당시 불국사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는 해여서 소산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이듬해인 1996년 인사동이 발칵 뒤집혔다. '그림에서 광채가 난다'는 소문이 퍼졌다. 소산이 불국사 전경을 그린 가로 9m 세로 2.3m '천년배산'과 가로 8m 세로 2m 화폭에 눈내린 불국사를 담은 '불국설경'때문이었다.
이옥경 가나아트센터 대표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전시장면때문에 소름이 돋는다"며 "작품 설치를 끝마치고 전등 스위치를 내렸는데 그림에서 빛이나는 것처럼 환해 깜짝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더욱이 당시로선 엄청난 대작이어서 작품이 팔릴까 걱정했는데 전시 시작전에 팔렸다고 했다.
인생은 아이러니다. 그는 경주가 고향도 아니고 불교와는 다른 천주교 신자다.
그런 그가 경주를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것은 '먹의 정신'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의 뿌리이자 본거지'인 경주와 한국 미술문화를 잇는 수묵화는 일맥상통한다.
수묵화의 정신잇는 한국화가 박대성
◆순도 100% 먹 맛 '한국화가 박대성'
'불국사 작가'로 유명세를 탄 박대성은 '한국화가 박대성'으로 승승장구했다. 색채가 난무하는 시대에 '순도 100% 먹 맛'으로 미술시장을 평정했다.
경주에서 '신라인'으로 자처하며 초지일관 수묵 작업에 몰두한 그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다. 내년 가을에는 문체부와 경주 경상북도의 지원으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에 그의 이름을 내건 시립미술관이 문을 연다.
소산이 화가가 된 것은 우리나라 역사의 배경과 무관치 않다.
"밖에 나가기가 싫었어요. 다들 '병신'이라고 놀렸지요."
다섯 살 때 고아가 되고 6.25전쟁 때 한쪽 팔도 잃었다. 할아버지밑에서 자란 그는 제사때 치던 병풍에 매혹당했다.
"갱지에 끼적끼적 병풍에 있던 그림을 따라 그리면 어르신들이 '고놈 그림 참 잘 그린다'고 칭찬을 했어요. 그게 힘이됐죠. 그래서 밖에 나가지도 않고 그림만 그렸어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 한쪽팔의 결핍은 먹과 붓맛에 취하게했다.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독학으로 고행의 길을 걸었다. 20대이던 1970년대 국전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국전에서 상을 여덟번이나 받았고 19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으며 미술시장에 떠올랐다. '한쪽 팔 작가'가 아닌 '한국화가 박대성'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한국화가 박대성
◆평생 글씨 연습에 매진하며 '원융' 화두
경주에서 독거생활을 하며 작업에 매진해온 그는 '원융'에 천착하고 있다.
'원융'은 막힘과 거리낌이 없이 두루 통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원융무애(圓融無碍)에서 가져왔다.
"'산수 전문가' 같은 수식어를 떠나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리고 싶었어요."
29일 만난 박대성 화백은 "원융은 그림을 그릴 때 거칠 것 없이 나를 열어놓고 사물을 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수묵화에서 중요한 필선(筆線)을 제대로 살리고 필력을 기르고자 평생 글쓰기에 힘을 쏟은 그는 지금도 혼자 경주 작업실에서 생식하며 글씨를 쓰고 필법에서부터 작업을 풀어간다고 한다.
그는 "문자는 곧 문화"라고 강조했다. 박 화백은 "한문 자체가 삼라만상을 디자인한 것이고 글자가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며 "글씨를 쓰면 삼라만상이 단순화되고 획이 되어 눈으로 들어오는 만큼 필력이나 중봉(中峰)을 체득해야 한다"며 국악에서 득음을 하듯, '득필'에힘썼다고 했다.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수묵을 현대화하는 '수묵화의 대가'로 등극한 그는 "전통(서예)을 외면하는 한국화단의 흐름이 비애스럽다"고 했다.
"중국의 수묵화가 세계 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는 것도 물질이 아닌 정신을 중시하기 때문이지요."
2006년 이후 7년만에 그의 개인전이 오는 11월 1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우윳빛의 백색이 도드라지는 중국의 전통 종이인 옥판선지(玉版宣紙)에 그린 그림은 목판화처럼 단단하다. 구상과 추상의 경계도 없이 먹 색깔이 꿈틀거린다.
현대적인 감각의 필선이 돋보이는 글씨와 진짜 도자기가 붙어있는 듯 사실적인 '고미' 연작등 50여점을 전시한다. 먹의 필선만으로 눈내린 불국사 풍경은 담은 8m 짜리 2013년작 '불국설경'도 선보인다. 전시는 11월 24일까지. (02)720-1020.
박대성, 봉암사 백운대, 330x200cm, Ink on pap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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