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올 겨울 추위가 예년보다 빠른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기상청 전망에 따라 전력수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원전비리 여파로 가동을 못하는 원전들도 수두룩해 지난 여름에 겪었던 사상 최악의 전력난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올 겨울 전력수급 확보를 위한 전력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여름 위조부품 사용에 따라 원전 3기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9·15 사태'라는 재앙의 문턱까지 다다른 바 있다. 자칫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긴급 절전을 호소하고, 유관기간인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전력거래소 등도 범국민전 절전운동을 펼쳤다.
결국 국민들과 산업계의 적극적인 절전 동참으로 올 여름 전력위기를 벗어나게 된 셈이다. 문제는 현재 멈춰 있는 원전이 7기에 달하고, 계획예방정비로 쉬는 발전소가 많아 여전히 전력공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는 점이다.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 등 시험성적서 위조로 가동이 중단됐던 원전들의 불량부품 교체가 지연됐고, 새롭게 가동 예정이었던 신고리 3호기도 내년 3월 이후에나 상업운전이 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원전 가동 중단으로 원전 최대 설비용량의 13%인 653만kW를 쓸 수 없게 돼 올 겨울 예비전력도 400만kW 미만을 웃돌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 올 겨울 한파의 강도가 예년보다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난방 사용 급증에 따른 전력수요가 폭증할 전망이다. 실제 추위가 최고조에 이른 지난 1월 최대 전력수요는 역대 가장 높은 7652만kW를 기록했다.
이 같은 난방 사용에 따른 최대 전력소비가 지난 2009년 이후 겨울철에 더 높게 발생되고 있어 올 겨울에도 전력난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원전들이 재가동을 못하는 상태에서 혹한이 닥칠 경우 정부의 수요관리 대책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당국 관계자는 "최근 전력수요가 매년 적게는 70만㎾에서 많게는 400만㎾까지 증가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겨울 최대 전력수요는 8100만㎾를 훌쩍 넘어설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원전 가동 중단 등 공급차질이 빚어질 경우 전력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 반복되는 전력난의 주범은 정부의 어설픈 수요예측
매년 반복되는 전력난에 언제까지 국민들이 고통을 짊어지고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할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만성적인 전력난의 원인이 정부의 어설픈 전력수요 예측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2년 이후 2년마다 향후 15년의 계획을 담은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확정한다. 이 계획은 2002년 처음 발표된 이래 2004년 2차, 2006년 3차, 2008년 4차, 2010년 5차, 2013년 6차 계획 순으로 공표됐다.
2년마다 전력수요 전망을 하는 것은 발전소 건설이 지역 선정, 각종 인·허가, 지역주민 동의 등으로 인해 7~10년 이상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15년 뒤까지 전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매번 기본계획을 보면 전력수요 증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뿐더러 수요예측에서도 번번이 빗나갔다. 올해 5월에 발표한 6차 계획에서도 올 여름 최대 전력수요를 7899만kW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8000만kW를 훌쩍 뛰어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단기예측 정확도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난 셈이다.
지난 2006년에 공표한 3차 계획에서도 2012년의 최대 전력수요를 6712만kW로 예측했지만, 실제 최대 전력수요는 7599만kW(2012년 12월 말)에 달했다. 이는 원전 7기에 해당하는 717만kW라는 상당히 큰 오차에 해당된다.
오차율에 있어서도 1차 계획에서 제시된 2008년의 예측수요는 5721만㎾였지만, 실제로는 6279만㎾로 –8.9%의 차이를 보였으며, 2009년 -11.8%, 2010년 -15.0%, 2011년 –15.0%, 2012년 –16.1%까지 벌어졌다. 연도별로는 2차 계획 -16.9%, 3차 계획 -11.7%, 4차 계획 –4.0%, 5차 계획은 –2.1%까지 예측에 실패했다.
이처럼 빗나가는 정부의 장기 수요예측은 크게 15%까지 차이가 나고 있어 만성적인 전력난의 주범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전력예비율(공급능력 기준) 14.9% 수준에서 2010년 6.4%, 2013년 3.8%로 매년 감소하고 있어 최근 3년간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비록 원전비리 등 발전소 운영에 따른 문제가 전력난을 일으킨 결정적 원인이지만, 그 바탕에는 이처럼 잘못된 수요예측에 따른 전력부족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수요예측이 한 번 빗나가면 단기간 내에 수급안정을 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만성적인 전력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다 정확한 수요예측 분석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은 "정부가 추진한 전력의 적기 공급능력 확충의 실패가 전력대란을 일으킨 주범"이라며 "정부는 올해와 같이 후진적인 전력난이 재발되지 않도록 전력수급 기본계획 수립 시 수요예측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고위관계자는 "현재 공사 중인 발전소들이 올해와 내년 준공될 예정이어서 내년 여름부터는 전력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것으로 본다"며 "다만 원전 고장 등 불확실한 사고에 대비해 주간예고 등 기존 대책 외에 전기요금 인상 등을 통한 전력수요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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