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겨울마다 치솟는 전력수요를 공급력 확대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석유·가스에도 못미치는 현행 왜곡된 가격구조를 손질해 요금에 의한 부하관리를 꾀하겠다는 복안이다.
◆ 주택용 요금 누진제 3단계로 축소…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정부는 전기요금체계 합리화의 방안으로 현행 6단계인 주택요금 누진제를 3단계로 축소하고,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이는 현재 원가에도 못미치는 불합리한 전기요금체계가 전력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에서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준으로 전기요금은 2002년에 비해 21%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가스는 72%, 등유는 145%, 경유는 165% 각각 크게 상승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에너지원보다 전기요금의 상승폭이 작었기 때문에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들에는 오히려 이득이 됐다. 실제 같은 기간 경유와 등유 소비는 27%, 57% 각각 줄어든 반면, 전기 사용량은 오히려 63% 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가장 싼 축에 속한다. 2010년 기준 한국의 산업부문 요금을 100으로 볼 때 호주는 105, 미국 117, 캐나다 121, 영국 209, 일본 266, 이탈리아 445 등에 해당된다.
이에 정부는 발전소 추가건설 등을 통한 공급력 확충과 병행해 수요관리 쪽에 치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현행 6단계(1단계·사용량 100㎾h 이하, 2단계·101㎾h~200㎾h, 3단계·201㎾h~300㎾h, 4단계·301㎾h~400㎾h, 5단계·401㎾h~500㎾h, 6단계·501㎾h 이상)인 전기요금 누진제를 3단계로 줄이기로 했다.
또 연료비 변동이 전기요금에 자동으로 반영되게 하는 '연동제'도 시행해 가스나 석유 등에 비해 전기를 많이 쓰는 대체소비 왜곡현상을 줄이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계절·시간별 차등요금제를 바탕으로 한 수요관리형 전기요금제도도 확대·개선할 방침이다.
아울러 여유 있는 발전용량 확보를 위해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는 등 공급력을 확충하는 방안을 개편안에 반영키로 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을 통해 심야에 전력을 저장하고 피크시간대에 꺼내 쓰는 등 비상시 전력을 확보하겠다는 방안이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이 OECD 평균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산업용 전기요금과 가정용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며 "올 여름 전력위기의 주범이 빌딩·상가·학교에 보급된 시스템 에어컨이라는 점에서 전기요금을 최소 18~47% 인상해야 냉방 전력수요를 가스 등으로 분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2000년대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은 급등세를 보였지만 전기요금은 정부의 규제로 인상률이 매우 낮아 전력소비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했다"며 "전력 판매 단가가 원가 이하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는 왜곡된 전기요금은 다른 에너지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인상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 주택용 누진재 개편에 따른 요금부담 우려…산업계 반발도 극심
하지만 주택용 누진제 개편에 따라 서민들의 요금부담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여기에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안과 관련한 업계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어 정부로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개편안에 대해 서민과 업계의 형평성을 고려, 꼼꼼하게 살펴볼 것을 조언하고 있다. 자칫 잘못 설계될 경우 서민·중산층 부담 가중 논란으로 원점 회귀한 세제개편처럼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요금제 구간을 세 구간으로 줄이고, 누진배율을 3배 축소할 경우 최저 소득층인 소득순위 1분위 가구의 전기요금 증가율이 13.9%로 10분위 가구의 증가율(3.4%)보다 훨씬 높아 저소득가구에 불리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옛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안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누진제를 3∼4단계로 축소하면 대용량 사용자의 요금이 줄지만, 250㎾h 이하 사용 가정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산업계에서도 요금체계 개편에 따른 산업용 전기료 인상이 전체 제조업체의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열처리·철강·시멘트 등의 업종은 기업 생계가 달려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기철 철강협회 상무는 "지난 3년간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률이 이미 30%를 넘고, 주택용 등에 비해 원가회수율도 훨씬 높다는 측면에서 산업용에만 치우친 요금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논의에 앞서 제3자에 의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원가 검증이 선행될 수 있도록 가칭 원가검증위원회를 설치하고, 요금 인상 시에는 용도별 원가회수율을 명백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다양한 선택형 요금제를 도입해 부하 패턴이 일정한 기업은 기본요금을 높게 책정하고, 부하 패턴의 조절이 가능한 기업은 자체적으로 맞춰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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