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기(氣)를 살리자>투자는 고사하고 몸 사리기 바쁜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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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11-1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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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채명석ㆍ박재홍 기자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분위기의 확산은 기업들의 설자리를 갈수록 좁히고 있다.

반기업 정서로 대변돼온 기업에 대한 반감이 경제민주화 바람을 등에 업고 각종 규제와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까지 더해지면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의 문을 닫아걸고 있다.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정부와 정치권에 민간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확대로 분위기 반전을 노려보려고 하지만 성의를 보여도 역으로 규제와 압력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기업에게는 고민거리다.

이는 단순히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이라는 조직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거리다.

◆넘쳐나는 규제에 몸살 앓는 기업들

지난달 8일 국세청이 발표한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정기신고 결과에 따르면 신고자의 93.5%인 1만170명이 중소·중견기업 주주였다. 대기업 집단 소속 신고자는 1.5%인 154명에 불과했다.

일감몰아주기 도입 취지인 대기업의 편법 증여를 막기 위함과는 거리가 먼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부터 경제민주화와 함께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기업에 대한 규제법안이 봇물을 이뤘다. 물론 그 중에는 대기업이나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적용 돼 왔던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기 위한 법안도 있었지만 총선과 대선 등을 거치며 여론을 의식해 만들어진 설익은 법안들도 적지 않았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각 부처에서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한 규제 건수는 지난 9월 기준 1만4977건으로 5년 전인 2008년 9753건에 비해 절반 이상 늘어났다. 그에 반해 같은 기간동안 폐지된 규제는 258건에 불과했다.

2010년부터 2012년 말까지 매년 약 1000건의 규제가 새로 생겨난 셈이다.

올들어 급증하고 있는 기업 대상 세무조사와 검찰조사, 공정위 과징금 부과는 기업에게 핵폭탄과도 같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초기엔 세무조사가 늘어나는 경향은 있었지만 올해는 특히 아예 작심하고 이를 꽉 깨물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정도가 심각하다.

이미 50여개 대기업들이 연이어 세무조사를 받았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결과에 따라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가 예상된다.
이처럼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규제들로 기업들은 ‘몸 사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열심히 벌어서 낸 이익을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에 쓰지 못하고 규제를 막고, 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는 실정”이라며 “새롭게 투자를 하고 싶어도 언제 어떻게 새로운 규제가 나올지 몰라 여력이 있어도 우선을 기다리고 보자는 게 현재 기업들 사이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10대 그룹의 결산법인 69개사의 유보율이 1442%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대기업들이 최근 얼마나 몸을 움츠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자본대비 잉여금 비율을 나타내는 유보율은 기업들이 돈을 얼마나 쌓아두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지표다.

◆“정권 교체마다 반복되는 오너리스크가 경제성장 발목”

 한화 SK CJ 태광 등 대기업 총수들은 여전히 옥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재판 과정에서도 그동안 국가경제에 기여한 공로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오너의 부재로 인한 피해는 이미 가시화 됐다. SK그룹은 우한 프로젝트와 칠레 화력발전소 건설 등 대규모 투자 사업이 6개월째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한화 그룹 역시 이라크 신도시 건설과 태양광 발전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CJ그룹은 중국업체 인수 협상이 중단됐고, 1조원대 미국 물류업체 매수가 보류 됐다.

최태원 SK그룹, 김승연 한화그룹, 이재현 CJ그룹 등 세 곳의 회장은 모두 각종 위법 의혹에 휘말려 자리를 비운 상태다.

이들 외에도 현재 이른바 ‘오너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기업들은 다양하다. 현재 세무조사가 실시 중인 효성그룹의 조석래 회장이나 정권교체와 맞물려 사리에서 물러난 이석채 회장의 KT, 그리고 꾸준히 거취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정준양 회장의 포스코 역시 오너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나 KT의 경우 민간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 이들 기업이 100% 민간기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규모의 이들 기업이 매번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기업의 수장이 교체설로 홍역을 앓는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이들 기업의 위치는 위태로울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재계를 상대로 벌어지는 일종의 ‘군기잡기’ 관행이 경제활동의 위축을 초래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벤처창업 기피·안정적 직장 추구 분위기는 결국 성장정체로 이어져”

대내외 압박으로 인해 기업의 경영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는 벤처창업은 현실에선 점점 어려운 이야기가 되고 있다.

최근 대학생들이나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공기관 등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 역시 도전보다는 안정적 직장에서 안주하려는 경향이 높은 것을 보여준다.

최근 중소기업청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석·박사 인력의 벤처창업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특히 2009년 31.7%와 2010년 28.6%에서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어 정부의 정책과는 반대되는 양상을 나타냈다.

결국 반기업 정서를 기반으로 한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이 기업환경을 계속해서 악화시킨다면 경기활성화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벤처창업까지 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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