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사진=이형석 기자]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한국 영화 역사와 함께 나이를 먹은 77세의 노배우 신성일은 여전히 청춘에 사는 듯했다.
영화 ‘야관문:욕망의 꽃’(감독 임경수·제작 비욘드필름에이트웍스·이하 야관문)의 개봉을 맞아 지난 8일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만난 신성일은 “내가 늦은 덕분에 예쁘고 젊은 배슬기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신성일은 야관문에서 죽음을 앞두고 20대 간병인 연화(배슬기)에게 욕정을 품는 종섭으로 분했다. 영화 ‘증발’(1994) 이후 20년 만의 주인공이다. 말기 암의 종섭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운동으로 다진 근육을 빼고 체중을 6㎏ 감량했다.
“국회의원을 하고, 5년간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영화판을 잊어본 적이 없어. 하지만 내 나이가 있다 보니 들어오는 역할이 다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늙은이뿐이더라고. 요양소라면 문병 가는 것도 싫어. 하지만 종섭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투쟁하는 인물이라 끌렸지. 게다가 젊고 예쁜 (배)슬기와의 멜로도 있으니 거절할 이유가 있나.”
신성일 [사진=이형석 기자]
야관문은 신성일에게 542번째 출연작이자 507번째 주연작이다. 이제는 이골이 났겠다고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배슬기 앞에서 티를 낼 수 없어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굉장히 긴장했고 두려웠다. 20년 만의 복귀작이니까. 시사회 끝나고 저명한 영화 평론가들이 ‘오랜만에 격조 있는 영화가 탄생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나서야 안도했다”는 신성일은 칭찬받은 어린아이처럼 으쓱해 했다.
신성일이 49살 어린, 막 배우로서 걸음마를 뗀 파트너 배슬기에게 어떤 조언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시선. 드라마는 입으로 말하고 영화는 눈빛으로 말하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감독이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라고 반문한 그는 “현장에서는 감독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줘한다.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어기지 않은 것이 내가 영화판에서 살아남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한국 배우 중에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인과의 세계 일주 모험담을 늘여놓으며 “내년이면 결혼 50주년이니 마누라와 여행을 갈까 한다”는 이야기를 ‘젊은 오빠’ 신성일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빼곡한 백발도 그의 붉은 기운을 감추진 못했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사랑이지. 삼시 세끼 좋은 것 챙겨 먹고 애인도 만나고…. 싫어하는 사람이랑 붙어 있을 필요 있나. 싫어하는 사람도 떨어져 있으면 애틋해져. 좋은 사람도 붙어있으면 미워지는 거고.”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해 반세기가 넘게 한국 영화를 지켜온 그의 사전에 은퇴라는 단어는 없는 듯 보였다. “드라마야 이순재 형님이 굳건히 지키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노배우 기근이 심해. 그런 의미에서 야관문은 나에게 선물 같은 작품이지. 영화배우 신성일의 존재를 관객에게 떠오르게 했으니까…. 이번 작품을 하면서 ‘아, 그래도 몇 작품은 더 할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겼어. 내 543번째 작품이 뭐일지 기대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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