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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남 대전지방보훈청 보훈과
1950.6.25. 새벽, 선전포고도 없는 포성을 앞세워 북한의 김일성은 구 소련제 탱크 등 중무기를 동원하여 남침을 강행했다.
옹진에서 발화한 전투는 곧바로 개성, 춘천 등 38선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철저히 준비된 북한의 도발은 단숨에 대한민국 서울을 함락하였고, 국군은 낙동강 이남으로 몰리게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한 참전유공자와 미군과 UN군의 희생과 공훈은 꺼져가는 전선을 극복하고 북진에 대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6.25 전쟁은 미국과 UN군의 참전, 소련의 북한에 대한 옹호와 중국의 전격적인 참전으로 자본주의진영 대 사회주의진영의 국제적 이념전쟁으로 확대되면서 1953.7.27 정전협정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포성이 오가던 6.25 전쟁을 몸소 겪어보지 못한 많은 국민들은 무관심 속에 끝나지 않은 전쟁의 의미를 생각 못하고,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착각하며 비극적인 역사의 참상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2010. 11.23. 서울역의 한 시민은 인터뷰에서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날 수 있구나, 전혀 그런거에 인식을 안 하고 살았는데” 라고 말했다.
이 날 북한은 연평도로 모두 170여발의 포탄을 두 차례에 걸쳐 군부대와 주거지에 퍼부었다. 우리 군은 즉각 F-15K와 KF-16 등 주력 전투기를 비상 출격시켰고, K-9 자주포 50여발로 대응사격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도발 행위로 해병 2명과 주민 2명이 숨지고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연평도 도발은 1953년 정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토에 포격을 가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심각한 도발행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는 11.23. 연평도 포격 도발 3주기를 맞아, 북한의 기습적인 포격도발에 맞서 조국수호라는 일념 하나로 포연 속을 가로지르다 적의 포탄에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와 고 문광욱 일병의 고귀한 위국헌신의 정신을 기리고, 국민으로서 올바른 국가관 확립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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