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저도 깜짝놀랐어요. 그림이 다 팔릴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요."
30년째 한지작업을 해온 한지조형작가 유봉희(전북대 초빙교수)는 지난 10월 독일 아트칼스루에 아트페어에서 다시 힘을 얻었다.
지난해에 이어 들고간 한지작업 9점이 솔드아웃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솔직히 기대도 안했다"
작년에 처음나간 해외아트페어는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단 한 점도 독일사람들을 사로잡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작가의 작품을 출품한 독일화랑 '칼스루훼 아트파크갤러리' 대표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독일인들은 오래보고 또 봐야 스며드는 스타일이라며 내년을 기대하자고 했지만 정작 작가는 시큰둥했다.
일년후인 지난 10월, 작품을 들고 독일로 직접 날아간 작가는 예상치못한 기쁨에 맞닥뜨렸다.
아트페어 첫날부터 작품은 반응을 보였다. 작품값은 호당 25만원. 20~30호 크기 작품은 비교적 비싼 가격임에도 팔려나갔다. 언론의 호평도 이어졌다. "이렇게 독특한 작품은 처음이다"는 반응과 함께 작업, 기법에 대한 물음도 나타났다.
작가는 "기운이 났다". 그동안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의문과 의구심이 한순간에 자신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작품판매는 러브콜로 보답했다. 독일슈르트가르트에 있는 domberger 화랑에서 초대전을 제안한 것. 서울과 전주에서만 열던 개인전을 내년엔 독일에서 소개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다.
지난 25일 서울 인사동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작가는 "그동안의 작업이 보상받는 것 같아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목발을 짚고 있는 작가는 전시 한달전 작업하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하지만 1년전부터 기획된 전시를 취소할수 없어 예정대로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서울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작품은 가죽이불이나 가죽 옷처럼 보인다. 여러겹의 한지(장지)가 눌러붙어 단단해진 바탕위에 재봉틀의 흔적이 지나갔다. 마치 수를 놓듯 바느질 된 자국은 드로잉처럼 자유롭게 다양한 형상을 보여준다.
"줌치 기법이에요. 옛날 담배 쌈지주머니를 만들던 기법이죠."
기계는 대체못할 노동집약적인 수공과 내공이 담겼다.
한지를 세장에서 아홉장까지 겹쳐서 물속에 담가 불리고 엉켜진 한지를 일일이 손으로 만져 앰보싱이 드러날까지 한지의 본성을 뽑아낸다. 오랜시간을 거쳐 말려지면 가죽처럼 질긴 한지가 탄생하는 것. 그위에 채색을 하고 재봉틀로 드로잉하듯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15년째 해오고 있다.
그동안 예원예술대학교에서 한지조형디자인학과 교수로도 활동하며 제자들이 있지만 자신의 작업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고 했다. "조수들은 이 느낌을 내지 못해요."
고독한 작업. 시간과 씨름하며 담금질해온 한지작업은 중독이다.
작가는 "이 한지에 형형색색도 맥을 못추죠. 자연스럽고 안정감있는 색감으로 변신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며 한지예찬을 펼쳤다.
"손으로 잡아보면 한지의 매력에서 못빠져나와요. 친숙한 느낌이랄까. 오랜 친구같은 느낌이죠. 한번 만져보세요."
작가는 이번에 연 7회 개인전에 한지로 만든 팜플릿을 한정판으로 만들었다. 이 좋은 느낌, '한국미술의 무한한 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바람이다.
■유봉희작가=조선대와 원광대 산업대학원 섬유공예과를 졸업했다. 한국화가 이재승(예원예술대학교 미술디자인학부)교수의 부인으로 현재 한지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과 전북대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은 전주한지박물관, 완주군 한지박물관,전주공예품전시장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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