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번 인사에서 삼성그룹은 ‘전자 DNA’를 전 그룹에 전파하기 위해 전자 출신 인사들을 대거 계열사에 배치했다.
과거에도 이 회장은 전자 출신 인사를 계열사로 보내는 일이 있었지만 각 계열사의 문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졌을 뿐 올해만큼 많은 인사가 한꺼번에 내려간 것은 드물다. 전자를 빼면 특출난 성과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 회장의 강한 불만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신경영 20주년을 맞은 이 회장은 지난 10월 28일 열린 기념식에서 또 다시 ‘위기경영’을 제시한 바 있다. 삼성그룹이 지난 20년 동안 ‘초일류 기업’의 반열에 올랐으나 이는 전자의 뛰어난 실적에 의한 착시현상일 뿐 다른 계열사들은 기대했던 수준만큼 도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제조업 사업장에서 벌어진 인명 사고와 금융 계열사들의 부정행위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 회장의 1등 자존심에도 상처를 받은 게 결정적이었다. 이는 이 회장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왔던 경영원칙 중 하나인 ‘신상필상’(信賞必賞) 대신 선대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계열사에 꺼낸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실제로 이번 인사에서 각 계열사 출신 인사들은 사장 승진에서 누락됐다. 부품소재기업으로 변신하는 제일모직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는 삼성전자에서 LCD사업부장, 스토리지담당, LED사업부장 등을 지낸 조남성 부사장이, 삼성SNS를 합병해 새출발하는 삼성SDS의 신임 대표이사에는 전동수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이 선임됐다.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에는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이, 삼성벤처투자 대표이사 사장에는 이선종 삼성전자 사장이 임명됐다.
또한 소수의 가신을 내려보내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노하우를 컨트롤 하는 것만으로는 회사를 변혁시킬 수 없다는 판단아래 초일류의 또한 노하우를 경험한 전자 인사들을 대거 내려보낸 것은 조직의 문화를 아예 바꿔버리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앞서 지난달 초에는 삼성전자의 미국 오스틴 법인장으로 일하던 한우성 전무, 한정욱 시스템 LSI 상무와 조한구 반도체연구소 연구위원이 삼성전기로 이동해 회사의 주력 사업중 하나인 인쇄회로기판(PCB)사업의 개선을 위해 만든 ‘기판(ACI) 일류화 테스크포스(TF)’에서 사업전략을 마련하고 있으며, 삼성엔지니어링에는 정진동 전무를 비롯한 전자 출신 10여명이 ‘경영 선진화 TF’를 구성해 회사의 체질 개선을 추진중이다.
이런 점을 미뤄볼 때 이번 주 안으로 단행될 삼성그룹 임원인사에서는 더 많은 전자 출신 임원들이 계열사로 자리를 옮길 전망이다.
비 전자 계열사 임직원들로서는 참담한 결과다. 숱하게 기회를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한계의 벽을 넘지 못한 책임을 지우겠다는 이 회장의 강한 결심 아래 이들 기업들은 환골탈퇴에 가까운 구조개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이 후계구도를 그리고 있다는 소문은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앉을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삼성그룹을 재구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만큼, 이 회장이 스스로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는 당분간 전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기됐던 이 회장의 건강 이상설 또한 불식시킬 전망이다. 다시 말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 담당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제일기획 경영전략 부문장) 등 3남매의 경영수업도 당분간 이어질 것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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