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현철 기자 = 일흔을 앞둔 노인에게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합격입니다."
모래바람이 부는 한화건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최고령 직원 이문범 반장(69)의 이야기다.
한화건설 대표이사인 김현중 부회장 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 반장은 "지원할 때는 '이 나이에 어디서 받아줄까'라고 생각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반장은 이라크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생산하는 배처플랜트(콘크리트 배합 시설)를 관리하고 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전 건설현장에 콘크리트 공급이 끊기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져 어깨가 늘 무겁다.
그는 1981년 현대건설에서 이라크 고속도로 공사로 첫 해외현장 근무를 시작했다. 그 후 중동의 쿠웨이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프리카의 리비아 등 해외경험만 30년에 이르는 백전노장이 됐다. 2009년 앙골라 현지회사에서 퇴직할 때 이미 65세였다. 그러나 올해 이라크 채용광고를 보는 순간 다시 열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반장은 "현장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현장을 떠나면 스스로 도태되고 우울해진다"며 "이라크에서 동료직원들과 고희연을 치르는 최초의 한국인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분당급 규모의 신도시 개발 공사인 비스마야 사업은 내년부터 10만가구 국민주택 건설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화건설이 해외건설 역사상 최대인 80억달러 규모의 공사를 차질없이 수행하고 있는 것은 김승연 그룹 회장의 글로벌 경영전략과 지원이 바탕이 됐다고 업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600여명의 한국인이 일하고 있는 이라크 현장에는 이 반장 외에도 퇴직 후 다시 일자리를 찾은 실버세대 직원들이 5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수많은 해외경험으로 다져진 전문지식과 도전정신, 열정으로 나이를 무색케 하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화건설은 현장 투입인력 중 10%를 노하우를 보유한 경쟁력있는 50대 이상 중동건설 유경험자로 선발해 실버인력의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실버근로자 옆에는 열정과 패기가 느껴지는 20대 초반의 신입사원이 항상 함께한다. 실버근로자들이 2~3명의 신입사원을 맡아 집중 육성하고 이들은 현지 근로자 수십여명을 관리하며 현장업무를 지시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신입사원들은 실버근로자의 기술과 해외현장 노하우를 배우고, 현지 근로자들을 지휘하는 통솔력을 키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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