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국내 기관 투자자 52곳 가운데 31곳은 7월 초부터 이달 6일까지 열린 코스피 상장사 주총 이후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에 따른 의무사항을 공시하지 않았다. 이를 지킨 21곳 가운데 15곳 또한 최근 개정된 가이드라인이 아닌 2010년 이전에 만들어진 옛 지침을 따랐다.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는 기관은 10곳도 안 된다는 얘기다.
기관투자자가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관련제도 자체가 구체화되지 않은 탓이다.
자본시장법은 집합투자업자에 대해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개할 때 적절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시행령에서 정한 자료를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시행령을 보면 첨부자료에 대해 '의결권 행사와 관련된 집합투자업자 세부지침'이라고만 명시가 돼 있다. 자의적인 해석이 생길 여지가 큰 것이다.
이런 탓에 기관투자자가 해마다 거수기 논란을 재연시키고 있지만 당국은 제도 개선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관투자자가 주총 안건별로 일관성 있게 의결권을 행사해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 않을 경우 피해는 일반투자자가 볼 수밖에 없다.
송민경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의결권 행사지침을 담은 가이드라인은 기관투자자가 투자기업 경영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핵심 수단"이라고 말했다.
반면 해외 사례를 보면 기관투자자에 대해 의결권 관련 의무가 강화되고 있다. 세계지배구조개선네트워크(ICGN)가 2007년 공개한 '기관투자자 책임에 관한 원칙'은 투자자나 의결권 행사 대상 회사가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정책을 만들어 공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송 연구위원은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지켜지려면 관련 공시 법규에 있어 안건별로 의결권 방향을 정하는 기준을 담은 세부지침이 추가돼야 한다"며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에도 최근 기업지배구조 관련 법규와 국내외 동향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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