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테이퍼링(자산매입 감축) 불확실성에서는 벗어났지만 일본 '아베노믹스'의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중국의 경제정책 기조 전환이 어디로 튈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감안해 우리 정부도 새해 경제정책 운영에서 가장 위험한 변수로 '대외경제'를 꼽을 정도다. 그만큼 올해 세계 경제 흐름은 주요 선진국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세계 경제의 변수는 미국과 중국의 행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시아·태평양 패권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는 G2의 대결구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숙제다.
한국 경제 역시 G2의 기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외교적 문제만 해결된다고 능사는 아니다. 현재 시점에서 경제적 해결도 쉽지 않다.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중국의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사이에서 적절한 중립적 조율도 필요하다.
아시아·태평양 국가 가운데 사실상 G2의 기싸움을 조율할 만한 국가는 한국뿐이다. 현재로서는 한국이 중립적 입장을 취하지 못할 경우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경제 변수는 더욱 커질 수 있다.
◆ 한국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경제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은 G2를 형성 중인 미국과 중국의 태도에서 감지된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들어 우리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중국의 내수정책에 대해 G20 등 각종 국제회의에서 비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서자 미국이 '중국과 가까이 지내는 모습이 껄끄럽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 6일 한국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노골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우호적 관계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보다 한국이 중국과 밀착되면서 상대적으로 미국과는 거리가 생긴 것 아니냐는 미국 내 일각의 인식이 깔렸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역시 한국과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적극적인 눈치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이른 시일 내에 방한해 박 대통령과 만나겠다는 의사를 전하면서 한국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유무역협정(FTA), TPP와 RCEP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 공조관계를 조율하는 핵심 키워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대외경제에서 FTA와 TPP를 대외경제의 변수로 꼽았다.
현 부총리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통상·무역 환경도 우리 편만은 아니다"라며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과 FTA, TPP 등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경제 복병으로 떠오른 TPP와 RCEP
TPP를 통해 대중 포위구도를 형성하려는 미국에 맞서 중국은 역내 RCEP라는 맞대응 카드를 추진 중이다.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간 경제문제로 보이지만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혼란스럽다. 일본이 일찌감치 TPP 참여를 선언하며 미·일동맹을 이뤘지만 나머지 국가들은 여전히 관망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의 RCEP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 같은 미국과 중국의 경제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강 대 강' 패권 충돌 시대에서 상생 가능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어떻게 구축해내느냐가 박 정부의 최대 고민거리다.
전문가들은 박 정부가 이해득실을 따져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다. TPP에 참여한다면 우리 GDP가 10년간 2.5~2.6% 늘고, 불참하면 0.11~0.19%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대로라면 참여하는 게 국익에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경제적 손익 계산은 수치로 판단하기 어렵다. 박 정부가 TPP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도 아직 손익 계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TPP에 참여할 경우 국내 농축산업과 자동차시장의 피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획재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중국과 아세안이 주도하는 RCEP 협상을 추진하는 사정도 TPP에 적극적일 수 없는 이유"라며 "참여 선언을 했다가 기존 참여국 텃세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안전장치를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 FTA, G2의 틈새에서 묘수를 찾다
미국과 중국의 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경제전쟁은 주변 국가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TPP와 RCEP를 놓고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박 정부는 이 같은 고민에서 FTA로 묘수를 찾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편 가르기에 적절히 대응하기 좋은 명분도 있다.
FTA 정책의 큰 틀에서 TPP의 실효성을 살펴보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시의적절한 발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로 TPP 참여국 중 미국·페루·칠레·싱가포르·브루나이·베트남·말레이시아 등 7개국은 양자 또는 한·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FTA가 발효 중이고, 일본·호주·뉴질랜드·캐나다·멕시코 등 5개국과는 양자 FTA 협상을 하거나 중단한 상황이다.
현 부총리도 "우선적으로 FTA를 생각하고 있다. TPP의 대부분 가입국이 우리와 FTA를 맺거나 추진 중인 곳"이라며 "TPP는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올해 정부의 대외 경제정책 역시 FTA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중, 한·중·일 등 역내 FTA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TPP는 심층 영향 분석, 공론화 과정을 거쳐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베트남 등 신흥국을 대상으로 상대국과 산업·자원·에너지 협력 등과 연계한 상생형 FTA 추진으로 G2 국가와 차별화된 노선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중소기업 FTA 활용 촉진을 위해 콜센터 1380을 개설, CEO 인식 제고·협력기업 지원, 품목 분류·인력양성·컨설팅·원산지 관리시스템 지원 등 다양한 애로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 중이다.
또 오는 6월 중 현재 발효 중인 FTA 활용 성과를 점검하고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통해 '중소기업 FTA 활용지원 종합대책'을 내실화할 계획이다.
◆ 미국 양적완화·중국 구조개혁 변수는
미국은 매월 850억 달러의 채권을 사들여 유동성을 공급하는 3차 양적완화(QE Ⅲ) 규모를 머잖아 서서히 줄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QE 축소는 세계 경기의 회복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유동성 회수는 투자심리 위축과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QE 축소와 맞물려 2년차에 접어든 일본 아베노믹스는 엔저 현상을 한층 심화시킬 전망이다. 한국의 수출 경쟁력을 흔들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도 위협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낳고 있다. 미국이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썰물'과 일본이 유동성을 푸는 '밀물'이 겹치는 셈이다.
중국 구조개혁 역시 한국 경제에는 큰 변수다. 중국이 개혁에 성공해 빠른 경기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호재이지만 최근 위안화 가치가 근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또 다른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경쟁구도라기보다는 동업구도다. 그러나 위안화 강세는 중국산 수입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한국 제품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중국은 내수시장 직접 공략을, 미국은 직접수출 전략을 검토 중이다. 중국의 경우 올해 10대 경제과제에서 포함될 정도로 정부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성장전략이 투자에서 소비 중심으로 변화하는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내수시장을 직접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대중국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직접수출 문제도 중국 시장 공략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에서 제조해 미국과 유럽으로 들어가는 수출 경로를 미국과 직접 교류해 인건비와 물류비 부담을 덜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그동안 미국에 직접수출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중국이 저임금과 공장 개설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내수 중심 경제정책에서는 이 같은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게 현지 한국 기업들의 분위기다.
김철주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중국은 2000년대 초반 제1시장으로 부상했다. 수출과 투자 주도로 성장해왔다"며 "최근에는 성장전략을 투자에서 소비 중심으로 바꿔가고 있다. 성장전략 변화에 맞춰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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