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유희석 기자 = 기업들의 2013년 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주식시장에서 '어닝 쇼크'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회계연도 말에 기업들이 잠재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해 실적이 악화되는 '빅배스(Big Bath)' 가능성이 커지면서 증시 약세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새해 첫 거래일인 지난 2일 44.15포인트(2.20%)나 떨어진데 이어 3일에도 1.07%(21.05포인트) 하락하며 1940선으로 주저앉았다.
코스피가 195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9월 4일 1933.03을 기록한 이후 4개월 만이다.
훨훨 날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 증시와 달리 코스피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엔화 약세, 중국 경제지표 악화 등 다양한 요인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기업들의 부진한 실적 전망이다.
에프엔가이드와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상장사들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현재 약 33조9000억원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최대 20% 정도 줄어든 26조9000억원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증시의 대표종목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의 경우 작년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가 당초 10조~11조원 수준에서 최근 최저 8조8700억원까지 낮아진 상태다. 이에 삼성전자 주가도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3일까지 6거래일 연속 하락하면서 시가총액이 12조원 가량 허공으로 사라졌다.
특히 올해는 기업들의 빅배스 가능성이 실적 부진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빅배스란 원래는 '목욕으로 몸에서 더러운 것을 없앤다'는 뜻이지만 증권가에서는 새로운 경영진이 전임자 재임기간에 누적됐던 손실이나 향후 잠재적 부실요소까지 한꺼번에 회계장부에 반영해 실적부진의 책임을 전임자에게 넘기는 것을 말한다.
더욱이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공기업 및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변경이 늘면서 예년보다 빅배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공기업 CEO 가운데 약 70%가 바뀌었으며, 대기업 CEO들도 상당 부분 교체됐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과거 정권 교체 1년 차였던 2003년 4분기와 2008년 4분기에 발생한 어닝 쇼크 충격이 예년의 두 배에 달했다"며 "올해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별 기업 가운데서는 이미 빅배스 효과로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기업들도 있다.
KT는 통신업종이 전체적으로 양호한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가가 지난해 11월 12일 이후 7% 이상 떨어졌다. 이석채 전 회장이 회사를 떠나면서 새로운 경영자에 의한 빅배스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삼성물산도 정연주 전 부회장이 물러나자 빅배스 우려가 커졌고 주가도 약세를 보였다. 업종 내 가장 우수한 수주 실적을 기록한 정 전 부회장이 사임한 것은 투자자들이 모르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의심이 투자심리를 악화시켰다.
다만 빅배스는 길게 보면 증시와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숨겨져 있거나 애매한 부실 등을 끌고 가기 보다 과감하게 정리하면 기업 이익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 팀장은 "회계상으로 빅배스의 반대말이 분식회계"라며 "빅배스를 통해 작년 4분기를 포함한 과거의 잔재를 정리하면 올해 기업이익 전망치가 깨끗해지면서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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