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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팔순을 맞은 신경림 시인(동국대 석좌교수)이 6년 만에 신작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을 펴냈다.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라는 제목의 시다. 열한 번째 시집이다.
올해로 등단 59년차. 이제 황혼의 고갯마루에 이른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번 시집을 엮었다”고 했다. 해맑은 웃음이 스민 시인은 여전히 소년같은 모습이다.
'가난한 사랑노래'(1988)에서 "가난하다고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고 절창한 것처럼, 시인은 항상 쓰러진 자들의 편에 섰다. 외로운 존재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다독거리며 그들의 꿈을 노래했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이 "우리 시대의 두보(杜甫)"라 일컬었듯이 신경림 시인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고 민초들과 더불어 저잣거리에 섞여 살면서 하찮은 존재들의 슬픔과 한, 그들의 굴곡진 삶의 풍경과 애환을 질박하고 친근한 생활 언어로 노래해온 '민중적 서정시인'으로서 자리매김해왔다.
이번 시집은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들어간듯하다. 시인은 지나온 길을 자꾸만 돌아다보며 "한평생 가난한 삶들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을 고졸하게 읊조리며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건넨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하늘에 별이 보이니/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별' 전문)
"부엌이 따로 없는 무허가촌 사글셋방에서의 가난한 삶 속에서 일찍이 사별한 아내('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그들은 이제 모두 떠나고 세상은 바뀌고 또 바뀌었지만 시인은 여전히 꿈인 듯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아득한 그리움에 젖는다.
시인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친구들도 추억했다. 어느 날 인사동에서 친구가 남긴 글씨 한 폭을 보고서 시인은 생각한다.
"내가 그의 결기 있는 죽음을 부러워하지 않았던 것은/ 살아남아서 무슨 일이고/ 조금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을 터지만./ (중략)/ 나는 늘 허망했다. 그보다 더 오래 살면서/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일을 겪었을 뿐./ 그뿐, 오직 그뿐이니."('세월청송로(歲月靑松老)')
시인은 "이제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됐다"면서 "한동안은 죽음이라는 것이 두려움을 가져다줬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두려움과도 친숙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시인은 시집에서 "쓰나미 속에서 팔 하나가 잘려나간 부처님"이 "빙그레 웃고만계신"('빙그레 웃고만 계신다') 모습에 섬뜩함을 느끼고 "하느님은 지금/ 어데서 어떤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시는가"('신발들') 탄식하듯 묻는다.
우리 사회의 외형은 풍요로워 졌지만 사회적 갈등과 빈부격차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더욱이 시는 읽지 않는 세태다. 시인은 뜻대로 안 되는 세상을 미워하면서도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시는 옳은 소리 하고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나무처럼 사람들 곁에서 즐거움과 위로를 주는 것이죠. 옳은 소리 속에는 독선이 있고 누굴 가르치려고 드는 속에는 오만 같은 게 있어요. 시는 그런 것을 벗어났을 때 정말 아름다운 시가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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