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태준 명예회장을 중심으로 강력한 조직력을 갖추는 원동력이 됐던 공채 기수들은 젊은 시절을 포스코의 발전과 함께하며 살아온 산 증인이다. 하지만 비 공채에 해당하는 영입 직원과 경력 직원들에게는 이러한 공채 기수들의 단결력이 포스코에 불필요한 ‘순혈주의’을 불러 일으켰다는 비난을 많이 해왔다.
권 후보가 회장으로 정식 취임하면 포스코는 역사상 총 8명의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을 배출하게 된다. 지난 1982년 고 박태준 명예회장(1982년 3월~1992년 10월)에 이어 오른 황경로 전 회장(1992년 10월~1993년 3월)은 육군 소위로 예편한 뒤 박 명예회장이 사장으로 있던 대한중석공업 관리부 부장으로 있다가 1968년 포스코 관리부 부장으로 합류했으며, 정명식 전 회장(1993년 3월~1994년 3월)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사장을 지낸 뒤 1970년 포스코 토건부장으로 입사했다.
유일한 외부 회장으로 기록되고 있는 김만제 전 회장(1994년 3월~1999년 3월)은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출신이다.
외부 인사 영입의 고리를 끊은 유상부 전 회장(1998년 3월~2003년 3월)은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 근무하다가 1970년 포스코로 이동했다. 유 전 회장 재임 당시 포스코는 민영화를 통해 일반기업으로 탈바꿈 했다.
김만제 전 회장을 제외한 황경로·정명식·유상부 전 회장은 포항제철소 건설 초기에 박 명예회장과 함께 동거동락해온 ‘동지’들로 현재의 포스코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2003년 3월, 공채 1기 이구택 회장이 선임되면서 포스코 역사상 공채 CEO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 전 회장은 이미 1998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왔지만 회장에 오른 다는 것은 공채 기수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1969년 입사한 뒤 열연기술과장, 수출부장, 경영정책부장, 신사업본부장, 포항제철소장 등을 역임한 그는 2009년 2월까지의 재임기간 동안 파이넥스 설비를 가동하고 스트립캐스팅 기술개발을 비롯한 생산능력 확대에 총력을 기울여 기술적인 부분과 품질적인 부분에서 세계 유수의 철강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인도 제철소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포스코의 고로 사업 글로벌화를 도모했다.
2009년 2월 입사한 정준양 회장은 1975년 공채 8기로 입사해 광양제철소장 등을 거치며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번 차기 회장 선출 과정에서 포스코가 반드시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일단 포스코 내부 인사가 회장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지 1년여 만에 진행된 지난 50여일간의 후보 선출 과정에서 정권과 연결된 수많은 외부인사의 유력설이 퍼지면서 포스코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CEO후보 추천위에서 막판 조율을 한 인사가 모두 포스코 출신이라는 것이 확인된 다음에야 포스코 임직원들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다만 공채 출신이 아닌 권 후보가 확정됐다는 점은 앞으로도 포스코 내에 남아있는 공채 중심의 순혈주의를 완화하고 전 조직원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작업이 지속될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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