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23일(목) - 599년, 당태종 이세민 출생
중국 역사에서 삼황오제 시대 다음 태평성대를 일컬어 ‘정관의 치(貞觀之治, 전관즈치)’라고 한다. 바로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연호인 정관(貞觀)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23년간의 재위 기간 동안 걸출한 정치력을 보이며 대내외적으로 수많은 업적을 남겨 중국인들의 열렬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왕위계승 과정은 깨끗하지 않았다.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이라는 왕자의 난을 통해 형제를 죽이고 28세에 왕위에 올랐다. 이세민은 아버지인 당 고조 이연을 따라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업적을 쌓고 당 건국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나 아버지가 맏아들을 태자로 삼자 형제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는 마침내 626년 7월1일 아버지에게 형(태자)과 동생(넷째)이 후궁들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밀고를 올리고 황제가 노해 이 둘을 불러들인다. 이 때 이세민은 궁궐의 현무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형과 동생을 죽였고 7월5일 이세민은 마침내 황태자로 책봉된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 능력 있는 인재를 고루 등용했고 겸손한 자세로 신하들의 충언에 대해서도 귀담아 들었다. 균전제(均田制)를 회복해 조정의 재정을 튼튼하게 했고 농촌경제도 안정화시켰다. 대외적으로도 오랫동안 골치였던 돌궐족, 토번족 등을 정복해서 대외적 안정도 이루었다.
그러나 그는 두 가지 큰 실수를 하고 만다. 첫째는 고구려 원정으로 그는 고구려 원정에서 참패하고 퇴각하면서 병을 얻어 오랫동안 시달리다가 51세(649년)의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그는 죽으면서 태자에게 절대로 고구려를 침공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둘째,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흐려진 그에게 신하들이 자신의 뜻대로 나라를 좌지우지하기 위해 정치적 재능이 없는 아홉째 아들 이철(李治)을 황태자로 책봉하도록 유도하고 결국 이철이 황태자(당 고종)가 된다. 이로 인해 690년부터 15년간 당 태종의 후궁이었던 측천무후가 황위에 올라 이씨 왕조가 잠시 끊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 1월23일(목) - 1368년, 주원장 명 건립
이민족이 통치하던 나라 원(元)으로부터 중원을 되찾은 한족의 나라 명(明)이 이날 건립됐다.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떠돌이 소작농의 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난세인 데다가 기근까지 휩쓸어 부모와 큰 형은 영양실조로 죽고 형제들을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그는 결국 밥을 먹기 위해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고는 탁발승이 되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걸식을 하게 된다.
그러다 1351년 백련교도가 주축이 된 ‘홍건적’에 가담한 것을 계기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홍건적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며 결국 홍건족 3대 세력의 하나가 되고 결국은 강남을 평정하고 북벌을 감행해 1368년 북경을 수복한다. 그는 1368년1월23일 나라이름을 명(明)으로 하고 수도를 난징에 정한다.
이후 277년간 중원을 통치하던 명나라는 1644년 농민군의 지도자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하게 된다. 1644년(숭정17년)에 이자성(李自成)의 반란군이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을 점령하고 또 북경을 함락하자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 혼란을 틈타 만주족의 청나라가 이자성을 축출하고 중원을 지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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