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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대한민국의 여기자들은 어떻게 살아냈을까.
김은주 연합뉴스 논설위원이 '한국의 여기자, 1920~1980'를 발간했다.
30년 가까이 기자로 활동한 저자는 "초기 여기자들은 선각자이자 여성운동가였으며 문학가였다"며 "세월이 흘러 숫자가 늘어난 여기자들은 청와대 출입, 고대사 연구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고 분석했다.
책은 최은희 등 시대를 앞서간 여기자 9명의 생애를 조망하면서 시대의 사회상, 가치관, 언론관, 여성관 등 선배 여기자들의 삶과 우리나라에 남긴 그들의 족적을 살폈다.
책이 다룬 시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 이각경이 '매일신보'에 입사한 1920년부터 이영희가 '한국일보'를 퇴사한 1981년까지다.
1부 '선각 여기자들'은 초창기 여기자들인 이각경(1897~?), 최은희, 허정숙(1902~1991)의 활약을 담았다.
이각경은 최은희, 허정숙에 비해 봉건적 요소를 과감하게 떨쳐내지 못한 한계를 가졌지만 민간지가 생기기 전 유일한 한글신문이자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공채로 선발된 '여기자 1호'였다.
2부에서는 작가, 문인, 문필가로서의 여기자들을 살펴본다. 주인공은 노천명(1911~1957))과 장덕조(1914~2003)다.
1930년대부터 기자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여성해방이나 여성운동보다는 문학활동에 도움이 될만한 직업으로 기자직을 선택했다. 당시 신문 업계에서는 상업주의가 확산하면서 문예물이 지면을 상당 부분 차지했고, 신문사에서도 문인을 기자로 선호
했다.
대구를 중심으로 유일한 종군여기자로 맹활약한 장덕조기자등 전쟁이 끝나고 산업화 시기로 접어들면서 여기자들의 활동 분야도 다양해졌다.
3부 '전후 부흥기 여기자들'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여러 영역을 개척한 정충량(1916~1991), 정광모(1929~2013), 이영희(1931~), 권영자(1936~)를 소개한다.
정충량은 여성 논설위원으로 필력을 과시했고, 정광모는 당시로는 드물게 정치부 여기자로 청와대 출입을 하며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취재했다.
동화작가로 유명한 이영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행된 어린이신문 '소년한국일보'의 창간 멤버였으며 나중에 고대사 연구로 이름을 알렸다. 권영자는 유신시절 언론자유를 외치며 해직된 뒤 자유언론 투쟁의 선봉에 섰다.
세월은 변했어도 여기자들의 치열함은 옛날이나 지금, 변함이 없는 듯하다.
"당시의 나는 첫째 신문기자라는 사명감에 젖어 있었다.…자는 시간만 제(除)해 놓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쏘다녔다."(62~63쪽-민간지 첫 여기자 최은희(1904~1984)가 기자 시절을 돌아보며 한 말). 362쪽.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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