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용호 개인전='지용호 맞아?' 할 정도로 완벽 변신이다.
4년만에 찾아온 조각가 지용호(36)는 '폐타이어 작가'에서 '전복 작가'로 화려하게 '전복'했다. '조각'이라는 분류가 무색할 정도로 작품은 조각의 경계를 넘어섰다.
예술가를 만난 전복껍데기도 놀랄만큼 작품은 외계생명체나 우주선같다. 미래적이고 세련미는 극대화 됐다.
10여년간 재료로 선택한 '타이어'가 인공의 산물이라면 전복은 바다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산물. 타이어 작품이었던 뮤턴트시리즈가 단단한 힘을 보여줬다면, 전복껍데기는 공간을 유영하는 듯하며 스스로 빛을 뿜어낸다.
“작가로서 더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싶은 욕심으로 만든 나만의 오리진입니다. 재현되지 않은 ‘그 자체’의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전복껍데기로 만든 작품은 '오리진 시리즈'로 명명됐다. "UFO만 보면 환장한다"는 지용호는 "사람이 그려서 나타낼수 없는 색감을 지녔다. 몽환적이면서 메탈의 느낌"이라며 전복껍데기의 마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듯 했다.
"미래지향적인 작업을 고민하던 중 지인과 방문한 전복 집에서의 전복껍질의 빛의 굴절을 본 순간,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낼 새로운 아이템이라고 확신했죠."
폐타이어로 만든 '뮤턴트 시리즈'를 통해 동물에서 인간까지 구체적 형태를 재현하며 자신만의 종의 계보를 체계화했다면, 전복껍데기의 '오리진 시리즈'는 비행접시같은 느낌의 곡선으로 추상의 형태를 지향한다.
"오리진시리즈 또한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하는 생명체처럼 얼핏 본 듯한 형태지만, 머릿속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도화지와 같은 순수성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살면서 접한 다양한 이미지들이 작품에 고착화되는 것 같았거든요."
'가장 희소한 능력은 가장 보편적인 능력'이라고 했던가.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완전히 '새롭고 환상적'으로 다가오는 전복껍데기로 만든 '오리진 시리즈'는 국내 조각시장과 공예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할 듯하다.
이번 전시에는 전복껍질 400kg를 사용한 '오리진 시리즈' 신작 15점과 '뮤턴트 시리즈' 1점을 만나볼수 있다. 전시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23일부터 2월 6일까지.(02)720-1020. 박현주기자
■지용호 작가노트=나의 기존 작업은 <뮤턴트 Mutant>라는 주제로 사회, 과학, 윤리, 철학적 내용을 토대로 실제 형태를 왜곡, 강조하여 동물이나 사람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재현에서 벗어나 조각의 본질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춘 보다 근본적인 미적 가치를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이번 작업의 주제인 오리진 ‘origin’은 근원 또는 기원의 의미로, 재현된 것이 아닌 ‘그것 자체’라는 의미이다. 즉, 나만의 창작물인 순수 형상을 통해서 기존의 형태와는 어떠한 연결 고리도 없이 작업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조각을 해 보고 싶었다.
물론, 신이 아닌 이상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존하는 물질을 이용하여 이에 도전해 보고자 하였다. 특히 뒤샹의 변기 이후로 재료의 폭이 넓어졌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것이 미술의 재료가 되었고, 다양한 재료에 관한 나의 관심은 재료들을 다루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하였다.
예를 들어 시리즈에서는 주로 강한 생명체 표현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인공물인 폐타이어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 재료를 비교적 자유롭게 구사하는데 7년이란 시간이 필요했고 이제는 타이어를 통한 보다 다양한 표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시리즈인 <오리진-Origin>은 개념만큼이나 재료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Origin’을 통해 재현된 형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디자인을 시도하자 재밌게도 공상 과학 영화의 인공물과 같은 이미지가 자주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역으로 자연물에서 재료를 찾게 되었고, 땅을 느낄 수 있는 재료인 폐타이어와 달리 바다를 느낄 수 있는 조개류를 선택하게 되었다. 두 재료 모두 ‘껍질’이라는 느낌은 같지만, 구부림이 자유로운 타이어와 달리 조개 껍데기는 상당히 딱딱하고 견고하다. 붙이는 방식에 있어서도 타이어는 주로 텍스처가 있는 거친 바깥 부분을 이용한 반면, 조개류는 매끈한 안쪽 부분을 이용하여 인공적인 느낌을 강조하고자 했다.
제작 방식은 단순한 원형이나 타원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형상들을 디자인하고 여기에 생명감, 통일성, 일관성, 충실감 등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내가 원하는 형태의 디자인을 도면화시킨다.
기존의 작업을 토대로 다음 작업을 구상,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재현과 오리지널 사이의 고민은 지속될 것이다. 나는 아직 ‘진정한 창조’란 재현된 것인지 재현되지 않은 어떤 것인지, 아니면 그것은 영원한 신의 영역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예술의 고유한 가치(진,선,미)는 불변한다는 것이며, 작가로서 나의 의무는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미적 질서를 보다 풍부하고 다양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