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투쟁이 반미의 물결로 향했을 때는 어김 없이 미국 대사관이 시위의 현장 속에 있기도 했다.
이 같은 미국 대사관이 생기기까지의 역사는 제너럴셔먼호 사건, 신미양요 등을 거친 뒤 조선과 미국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외교관계를 맺는 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조선이 구미 국가와 맺은 최초의 수호통상조약이다.
하지만 1905년 을사조약으로 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이 때문에 미국과 맺은 외교관계가 단절됐다.
미국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9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시까지 남한에서 군정을 실시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첫 역사는 1949년 1월 1일 미국이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 최초로 정식 승인하면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 발표 이후 미대표부는 본격적인 인적 구성을 갖추었고 1949년 4월 주한 미국 대사관으로 승격했다.
이렇게 설치된 미대사관의 인적 규모는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다.
나아가 대사관 서기관급 직원 중 정치 담당자가 거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대사관은 정치적 활동에 집중됐었다.
이 서울 중심 세종로에 있는 주한 미국 외교사절단의 공관인 대사관으로 첫 주한 미국 대사로 파견된 사람은 존 무초(John Much0) 였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921년 미국에 귀환한 인물로 홍콩과 중국에서 외교경력을 쌓은 동아시아 전문가였다.
심지어 그는 6.25전쟁 직전인 50년 6월 초 미 의회에서 38도선 부근에서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1949년 3월 25일 장면(張勉)을 초대 주미대사로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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