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해 12월 한국과 소련은 양국간 영사처 교환에 합의해 1990년 2월 주모스크바 대한민국 영사처, 3월에 주서울 러시아영사처가 각각 개설됐다.
이후 1990년 9월 30일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주모스크바 영사처를 주소련 대한민국대사관으로 승격했고, 1991년 12월 25 소련해체 후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를 승인하면서 주러시아 대한민국대사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주한 소련대사관(주한 러시아대사관)이 개설된 것은 이보다 앞선 1990년 12월 7일이다.
◇ 대사관 터를 둔 한국과 러시아의 설전
서울 속의 크렘린 궁으로 불리는 러시아대사관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한러수교조약을 맺으면서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끊긴 양국관계는 70여년만에 재시작을 알린다.
가난한 러시아는 과거 1885년 정동에 7500평을 구입해 러시아 공사관을 지었고 그 과거 러시아 공사관 터 7500평을 반환할 것을 요구한다.
아관파천의 쓰라린 기억이 다시 스친다.
*아관파천은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 2월 11일부터 약 1년간 왕궁을 버리고 러시아공사관으로 도망가 숨어 지내던 치욕스런 사건이다.
러시아 공사관을 둘러싼 돈으로 반환, 부지로 반환을 두고 왈가왈부 하다가 결국은 2500평은 러시아 대사관 터로 제공되고, 대신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한국대사관 터 2500평과 맞바꿨다.
◇서울 한복판에 크렘린 궁의 등장
1999년 6월 서울 정동 옛 배재고 부지에 착공 25개월만인 2001년 7월 새로운 러시아 대사관이 웅장함을 드러냈다.
12층짜리 학교, 병원 건물과 6층 짜리 본청, 그리고 경비실 등 연면적만 1200m2 이다.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을 연상시키는 청동도금 루코피차(동그란 구로된 지붕)가 어디서든 눈에 띈다.
내부 마감재와 인력까지 러시아에서 공수해와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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