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일간 이어진 ‘AI 방역 초비상’의 시급한 상황에서 환경부 철새 탐사팀이 농림축산식품부나 전북도, 부안군 등 방역당국 어느 곳에도 사전에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AI 조기종식을 위한‘방역’컨트롤타워인 농림축산식품부에 비해 환경부 등 관계기관의 안일한 상황인식은 AI 확산을 부추겼다는 것.
이는 △AI 발병원으로 불리는 가창오리와 큰기러기에 위성위치추적기(GPS) 미부착 △4차례의 AI 과거 경험에도 야생철새에 대한 관련 정보·대책 부재 △AI감염된 야생철새의 개체 증가에 대한 사전 경고에도 안일한 대처 등의 사례를 통해서도 짐작이 가능하다.
현재 AI는 호남·충청 이어 부산, 경북, 제주 등에서도 철새 폐사체 발견 신고가 잇따르는 등 확산 조짐을 보인다. 특히 민족 대이동이 있는 설 연휴가 지나면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AI 주범 가창오리 10만마리 머문 자리 알고도 방역안해
방역당국이 AI의 발병원으로 추정되는 가창오리 10만 마리가 내려앉은 장소를 확인하고도 방역조치를 하지 않았다.
환경부 철새 탐사팀이 이를 사전에 알고도 농식품부나 전북도, 부안군 등 방역당국 어느 곳에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환경부 철새 탐사팀은 지난 19일 밤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월동 중인 가창오리에 위치추적장치(GPS)를 부착하기 위해 오리떼를 추적하던 중 동림저수지에서 북쪽으로 20㎞ 떨어진 부안군 백산면 농경지에 모여있는 것을 확인했다.
탐사팀은 이어 20일 밤 GPS 부착을 위한 오리 포획에 나서 같은 장소에서 기다렸으나 오리떼가 동림저수지 북쪽 6㎞ 지점에 내려앉는 바람에 포획하지 못했고 21∼22일은 눈이 내려 오리떼를 추적하는 데 실패했다.
탐사팀 관계자는 "가창오리는 낮에는 호수에서 잠을 자고 밤에 먹이를 찾으러 농가 주변 논으로 이동하는데 19일 밤에는 가창오리 5만∼10만 마리가 동림저수지 북쪽 20㎞ 지점에서 먹이를 먹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10만 마리나 되는 가창오리가 떼를 지어 농경지를 오갔는데도 'AI 방역 초비상'의 시급한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즉각적인 방역은 고사하고 지금까지도 소독이나 예찰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AI의 주 감염원은 철새의 분변과 깃털이다. 가창오리 10만 마리가 먹이를 먹은 장소는 분변과 깃털이 대량으로 깔려 AI 바이러스에 오염됐을 개연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방역당국, 관계기관 간 불협화음 여전
정부가 조류 인플루엔자(AI) 발생 직전 사전방역 차원에서 최초 발병지인 전북 고창의 씨오리 농가를 점검하고도 AI 감염을 막지 못했다.
방역당국이 사전 차단방역의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AI를 대비한 방역 가상훈련 등도 지금껏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다.
방역당국은 지난해 11월23일 고창 씨오리 농가를 예찰한 결과 문제가 없다고 판단, 해당 농가에서 채취한 시료를 분석해 이틀 뒤인 25일에 AI 음성 판정을 내렸다.
이는 AI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21일인 점을 고려하면 고창 농장의 오리들은 이미 11월25일께 AI에 감염됐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방역당국이 AI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한 달 전 발병 농가를 점검해 소독실태와 출입자 통제 여부를 점검하고 방역교육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AI 감염을 막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방역당국은 지난해 12월 AI에 감염된 철새의 개체가 전년보다 50%가량 늘었다는 것을 경고하며 관계부처, 지자체 등에 고병원성 AI 특별 주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AI의 발병원인으로 확인된 가창오리떼가 지난해 11월부터 국내에 들어와 있었음에도 고병원성 AI는 확인하지 못했을 뿐더러 AI 음성 판정을 내렸다.
22일에는 처음으로 가창오리가 아닌 다른 야생철새에서 AI가 검출됐다.
방역당국이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에서 거둬들인 큰기러기 폐사체를 정밀검사한 결과, 가창오리와 같은 H5N8형 AI가 검출됐지만 큰기러기에 대한 정보를 내놓지 못했다. 야생철새 관련 담당부처인 환경부가 AI에 감염된 큰기러기의 활동반경, 이동경로, 개체수 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환경부는 오리, 기러기 등 야생철새가 AI에 감염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도 큰기러기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
과거 4차례에 걸친 사례를 바탕으로 야생철새에 대한 정확한 정보 파악과 대책이 이미 설계돼 있어야 했음에도, 환경부는 이를 안일하게 대처한 것이다.
아울러 방역당국은 동림저수지에서 머물다 21일 다른 곳으로 이동한 가창오리의 행방을 파악하는 데 수일이 걸렸다.
특히 방역당국은 이번 고병원성 AI 감염원으로 불리는 가창오리와 큰기러기에 아직도 위성위치추적기(GPS)를 달지 못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가창오리는 물에서 잠을 자 먹이를 먹는 들판에서 그물로 잡으려 했지만 채식장소를 달리한데다 바람이 불고 눈이 쌓여 실패했다”며 “GPS 10개를 가창오리와 큰기러기에 부착할 계획”고 말했다. 가창오리와 큰기러기의 포획이 쉽지 않고, GPS 장치를 부착해도 분실될 우려가 다분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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