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좋아하세요?” 이 질문에 대해 “아니, 음악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요?”라고 반문하는 사람은 음악을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냥 음악이 흘러나오면 듣거나 노래방에 가서 부르는 정도일 뿐이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이 질문을 받으면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구체적으로 음악 장르와 특정 음악, 가수, 작곡가를 언급하며 대답을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만나면 할 이야기가 참 많다. 커피숍에 앉아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나 골프를 쳐도 그 즐거움이 더 해 질 수 있다.
음악이 골프에 끼치는 영향, 오늘은 이런 주제로 이야기해보자. 골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추억의 팝송을 들으면서 40대 후반 이상의 골퍼에게 몇 가지 임상실험을 해 본 적이 있다. 아바, 보니엠, 밥 말리, 비지스, 사이먼 앤 가펑클 등의 ‘7080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골프장으로 가면, 그 날 골프 스코어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음악의 템포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이런 것과는 상관없이 감수성이 예민했던 젊은 시절에 즐겨듣던 친근한 음악을 통해 감성지수가 올라가면서 골프에 대한 나쁜 기억을 잊어버리고 즐거운 기분으로 라운드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효과는 ‘100돌이 골퍼’에게 많은 효과가 있었다. “오늘은 100을 깰 수 있을까? 드라이버샷 슬라이스 많이 날텐데….3번홀 개울을 못 넘으면 어떡하지?” 등등의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음악으로 인해 충만된 감성지수에 묻혀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싱글 핸디캡’ 골퍼에게는 좀 다른 효과가 필요했다. 단순히 소풍가는 분위기의 즐거운 음악만으로는 그들의 핸디캡을 유지하는데 필요한만큼의 감성지수를 높일 수 없었다. 예를 들어 한 시간을 운전해서 골프장에 간다면 마지막 10분 정도는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음악이 필요했다.
몇가지 시도해본 음악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록그룹 ‘부활’의 ‘사랑할수록’이라는 노래였다.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등의 거창한 음악을 기대했던 분들은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사랑할수록’의 가사는 사랑의 아픔과 후회를 느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수많은 라운드를 통해 느꼈던 골프의 아픔과 후회가 겹치면서 감정이입이 된다. 그리고 깊은 내면의 세계로 빠져듦과 동시에 아픔과 상처를 뛰어넘는 희열을 주는 효과가 있어서 잡념을 잊어버리게 한다.
이런 상태에 들어간 것을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필드’(field) 혹은 ‘존’(zone)이라고 한다. 이 상태에서는 뭐든 다 잘 된다. 라운드하는동안 이것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인데, 골프장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10분동안은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으면 그 날 스코어는 분명 좋을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면,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도 효과가 있다.
그리고 굳이 여기에 소개된 음악이 아니라도, 가장 좋은 음악 중에서 좀 심각하고 깊이 빠져드는 듯한 느낌의 곡이면 효과가 있다. 한가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마지막 10분동안 집중하는 음악을 들어야 하는 것은 싱글 핸디캡 골퍼들에게만 해당된다. 백돌이 골퍼가 이렇게 듣고 라운드를 하면 쓸데없이 너무 심각해져서 골프를 망친다. 그들에게는 다가올 라운드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리게 해줄 즐거운 음악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싱글 핸디캡 골퍼는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고 오로지 골프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골프 생각에 빠져 있으면 안된다. 평소 익힌대로 몸이 자기 역할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정신은 골프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필드이고 존이다. 음악은 이런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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