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연영 선생은 1864년 6월 20일 서울에서 구철조(具哲祖)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도 광주군 실촌(實村)에 살면서 문한직(文翰職)을 많이 배출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선생은 유교의 충효정신을 바탕으로 나라사랑정신을 키웠다.
1895년 8월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11월에 단발령을 공포하자 선생은 이천수창의소(利川首倡義所)에 가담하여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였으며, 1896년 1월에는 이천 백현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2월에는 광주의병과 연합하여 남한산성을 점령하였다. 4월에는 청송 감은리(甘隱里), 의성 수정사(水淨寺) 등지에서 영남의병과 연합항전을 전개했다.
또한 1897년 기독교에 입교하여 기독교 사상을 토대로 구국계몽운동을 전개하고자 이천에서 구국회(救國會)라는 이름의 애국단체를 결성하였다. 선생의 큰아들 구정서(具禎書)는 구국회의 조직과 실무를 맡아 선생의 활동을 지원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되자 선생은 이천․여주․광주 일대에서 군중집회를 열고 일진회(一進會)의 친일행위 등을 규탄하였다. 그러나 선생 부자는 1907년 일진회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군에게 붙잡혀 8월 24일 총살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위해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2월 한 달 동안 전시한다. 박현주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