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린 가슴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던 '노동의 새벽' 박노해의 '다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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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2-0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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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부터 15년간 아시아 토박이마을 돌며 만났던 사람들 사진전

시인이면서 사진가로 새 삶을 살고 있는 박노해 시인이 '노래하는 다리'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오선지 음표같은 소박한 사람들의 일상이 아름다운 이 작품은 가수 윤도현의 목소리로 작품 내용을 들어볼수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시인은 예언자이기도하지만 또 잡놈이기도 합니다."

 4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만난 박노해(57)시인은 "자신에겐 아트부터 포르노까지 다 있다"며 "한쪽에서는 빨갱이ㆍ한쪽에서는 변절자로 비난받았지만 유쾌하게 걸어왔다"고 했다. 

 낮은 목소리로 느릿느릿하지만 또박또박하게 말하는 그는 더이상 '전쟁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는 '노동의 새벽'의 처절한 그는 아니었다.
 
 말간 얼굴에 무념무상한 듯한 표정, 가슴에 손을 얹기도 하고 모으기도 하면서 말하는 그는 마치 종교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3년전부터 시인이면서 사진가로의 '다른길'로 들어섰다. 지난 15년간 '지구시대 유랑자'로 말로는 다 전할수 없는 진실과 목숨걸고 참구해온 새로운 사유를 사진과 글에 담아왔다고 했다.  2000년에는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내건 사회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하면서 노동운동에서 생명운동으로 방향을 바꿨다.  국경 너머 인류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마을'을 세워가며 새로운 혁명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장노동자였던 27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낸후 운명은 벼락을 맞은듯 갈라졌다.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의 보상은 커녕 사형수로 대치됐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결성을 주도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7년6개월의 수감 생활 끝에 1998년 출소했다.(1984년 출간된 '노동의 새벽'은 군부독재 정권의 금서조치에도 백만부 이상 발간된 '시대의 고전'이 됐다.)


 '서러운 운명'이었다. 민주화 이후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과거를 팔아 현재를 살지 않겠다"며 정치활동을 일절 멀리했지만 '정점에 달한 시대'에 대한 고민은 나날이 커졌다.

 박 시인은 "(예전에는) 사회구조만 바뀌면 내 삶과 인간성이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생존단계를 벗어나자 사회보다도 삶 자체가 문제가 됐다. 노동 착취가 공포가 아니라 노동 착취를 당하지 못하는 것이 공포가 된 세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눈부시게 진보하는 세계와 멀어져 유토피아적이 된 듯했다. "나쁜 사람은 나 뿐인 사람이다. 좋은 사람은 주는 사람, 나누어 줄줄 아는 사람"이라며 나눔과 자급자족의 삶을 꿈꾼다.

 날선 문장구사는 여전했다. 그는 (현대인들을)"임금 급여노동상품 인간"이라고 표현했고,"학교는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인류 최악의 수용소"라고 했다.  3세부터 30세까지 모두가 똑같이 만들어진다는 것.

박 시인은 현시대를 '비즈니스 문명의 시대'이자 '정보폭증 시대'로 정의했다. "가장 풍요롭지만 가장 인간성이 쇠약해진 시대', '가장 지식이 많고 똑똑해졌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시대', '가장 세계와 연결됐지만 정작 나 자신과는 가장 멀어져 버린 시대인거죠" 

출소후 15년동안 전세계의 분쟁 빈곤현장을 누비면서 그의 '혁명이 다시 시작' 됐다. 오래된 만년필과 흑백사진기만 가지고 지도에도 없는 아시아 토박이 마을들을 순례하듯 걸었다.

박 시인은 아시아토박이 마을에서 '순환 순수 숙명'의 세가지 정신을 발견했다. 아시아 시대가 부상하고 있지만 경제권력보다 문명전환의 중심축이라는 것.  아시아인 80%는 자급자족하는 토박이 농민들로 "그들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믿음 아래 어찌할 수 없는 숙명에 최대한 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이 가장 순수한 삶의 원형이자 희망의 종자"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아시아 토박이의 순수한 삶을 담은 사진전 '다른 길'을 연다.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찍은 사진들로 꾸몄던 '라 광야'전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전에 이은 세 번째 사진전이다. 

 '노동의 새벽'출간 30주년인 올해, 긴 침묵을 깨고 본격적인 발언의 시작이기도하다. 

 "한 시대의 끝까지 온몸을 던져 살아오다 길을 잃어버리고 정직하게 절망했습니다. 사진전은 정직한 절망에서 길어올린 희망찾기의 몸부림이자 보고서입니다."

  티베트와 파키스탄, 인도, 미얀마, 라오스, 인도네시아까지 총 6개국에서 찍은 흑백사진 7만점 중에 120여점이 전시된다.

줌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35mm 단 카메라로 역광으로 촬영했고 전통 흑백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을 인화했다..

 그는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길이 있다"면서 "아시아 토박이 마을의 이름없는 사람들을 통해 위대한 일상의 경이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새로운 사상과 삶의 비전이 필요한 때”라는 박 시인은 전시 타이틀인 '다른길'이란 보수와 진보, 성장과 분배를 수평적 대립을 넘어 삶으로부터 시작된 혁명이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 '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근원적 물음"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전시는 1993년 낸 시집 '참된시작'에 썼던 '마지막 시' 중 '가라 자본가 세상, 쟁취하자 노동해방'과 맞닿아 있다.  그의 이름 박노해는 필명. '박해박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이다. 본명은 박기평이다.

  정부나 기업의 협찬 없이 진행된다는 이번 사진전은 가수 이효리·윤도현, 배우 황정민·장현성, 개그맨 김준현 등이 작가가 직접 쓴 사진 소갯글을 직접 낭송해 들려준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급자족하겠다는 원칙으로 "정부, 재벌, 언론지원 받지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 이때문에 많이 힘들기도 하지만 덕분에 연예인들과 시詩와 시간을 나누는 시시詩時한 사이가 됐다"며 웃음을 보였다.
 
 사진 에세이 '다른 길'(도서출판 느린걸음)도 함께 나왔다.  사진작품은 165만원~770만원에 판매한다. 에디션이 10~20장까지 있다. 수익금은 지구마을 평화나눔활동에 쓰여질 예정이다. 전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3월 3일까지. (02)734-1977

 

박노해 화산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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