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희문은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문으로 쓰였으며 수구문 또는 시구문이라고도 불린다.
광희문은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세워진 문으로 숙종 37년에 고쳐 쌓았고 숙종 45년에 문루를 짓고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문루와 성벽 일부를 잃게됐다. 1975년 정비 작업이 시작된 광희문은 계속 철책에 갇혀 시민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