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권경렬 기자 = #1. 서울 성북동에 사는 대학생 한건희(25)군은 다가구주택 원룸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0만원을 내며 살고 있다. 최근 10개월째 월세가 하락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집주인에게 문의했지만 되레 "올해 새로 계약한 옆방은 월세를 올려 받았다"며 핀잔만 들었다.
#2. 결혼 2년차인 김창은(31)씨 부부는 서울 상암동의 한 아파트에서 보증금 1억80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내는 반전세로 거주하고 있다. 재계약 날짜가 임박해 "주변 전셋값이 많이 올랐으니 보증금 대신 월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울며 겨자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었다. 월세가격이 하락하고 있다지만 김씨 부부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다.
주택 월세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정부 통계와 달리 실제 임차시장에서 월세입자들의 부담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임차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조사방식 때문에 전셋값 상승에 따른 상대적 월세 하락이라는 '착시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11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8개 시·도 월세가격은 전월 대비 0.1% 하락하며 10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감정원 월세 통계는 전국 8개 시·도에서 3000개의 표본을 조사해 집계된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른 주택유형 비율에 맞춰 아파트·연립·다세대·단독·오피스텔을 표본에 포함한다.
2012년 국토부 통계연보를 기준으로 전국 주택점유 현황을 보면 월세 371만 가구 중 보증금을 내지않는 순수월세는 34만가구에 불과하다. 여기에 일정기간의 집세를 미리 내는 형태인 사글세 22만가구를 포함한다 해도 전체 월세가구의 약 15%를 제외한 대다수 월세가구는 보증부 월세에 해당한다. 특히 최근 몇년새 급속히 늘고 있는 반전세는 통계상 대부분 전세가구로 집계돼 사실상 훨씬 많은 월세가구가 통계에 누락되는 셈이다.
하지만 감정원에서는 매월 월세동향을 조사할 때 보증금에 월세이율을 적용해 순수 월세로 변환한 후 통계를 집계한다. 월세이율이란 전셋값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비율을 말한다.
서울 대치동 아이파크 전용 84㎡형의 경우 지난 2012년 2월 전셋값은 7억3000만원이었다. 당시 반전세 매물은 보증금 5억원에 월세 120만원에 계약됐다.
월세이율은 전셋값에서 보증금 5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2억3000만원을 월세 120만원으로 전환한 것으로 이 경우 0.52%가 나온다. 감정원 기준으로 순수월세를 집계하면 월세이율 0.52%를 보증금 5억원에 적용하고 기존 월세에 더해 380만원이 된다.
이때 월세이율은 전셋값을 기준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실제 세입자가 부담하는 월세가 오르더라도 순수월세 전환값은 되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아파트는 2년새 전셋값이 1억1000만원 올라 이달 현재 8억4000만원이다. 반전세 물건은 보증금 5억원에 월세 150만원선에 매물이 나와 있다. 이 경우 월세이율은 0.44%로 순수월세 전환값은 370만원이다.
실제 반전세로 거주하는 세입자 부담은 월 30만원이 추가됐지만 전셋값 상승에 의해 순수월세 전환값은 오히려 10만원 떨어진 것으로 정부 통계상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집주인들이 전세를 반전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최근 전환된 대다수 반전세는 계약상 전세를 유지한 채 별도로 월세를 내는 형태여서 통계상으로는 계속 전세가구에 해당된다. 별도 월세계약을 한다 해도 김씨 부부처럼 월세 보증금이 전셋값의 70%를 넘는 반전세의 경우는 아예 월세 조사 표본에서 제외된다.
김찬호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의 월세시장은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 1~2인가구 중심이었지만 저금리 기조 및 부동산 경기 침체 등에 따라 전세의 반전세화, 월세화가 가속화하면서 아파트 등 3~4인가구 임차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며 "전셋값이 상승하면 월세이율이 하락하기 때문에 단순 비교보다는 세분화된 통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감정원에서도 이같은 통계상의 오류를 인정하고 있다. 김세기 감정원 주택동향부장은 "월세 동향조사의 경우 전셋값에 기반해 수치를 산출하기 때문에 최근의 전셋값 상승세에 따른 월세가격 하락이라는 통계가 나온다"며 "향후 통계 발표시 이러한 점을 명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