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8일 고위급 접촉을 제안하고 이후 협의 과정에서 우리측에 이번 접촉 사실을 비공개로 해달라고 제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리측이 이런 요구를 거절, 결국 11일 오후 이번 접촉에 관한 합의를 마친 후 고위급 접촉 사실이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가장 잘 알려진 남북 비공개 접촉은 1971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등과 면담한 것이다. 당시 남북은 수차례 비밀 회동 끝에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 결국 비밀 접촉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가까운 예로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선전부장이 싱가포르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논의를 위해 비공개로 접촉한 사례가 있다.
당시 양측의 이견 속에 합의가 막판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고 정부는 비공개 접촉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비밀 접촉은 사실로 확인됐다.
이밖에 남북 관계의 고비마다 특사파견설, 비밀접촉설 등이 나돌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북측이 이번 접촉을 비공개로 제의한 배경은 대화의 의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과거의 사례에서 보듯 비밀 협의는 대개 남북 정상회담 등 중대 사안을 협의하는 자리였던 만큼 북한이 민감한 사안에 대한 좀 더 내밀한 협의를 벌이고자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우리측 수석대표로 청와대 관계자를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이럴 경우 접촉 장소도 외부 노출이 쉬운 판문점이 아닌 외국이나 북측 지역으로 제시했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 우리측은 우선 당면한 이산가족 상봉의 성사에 집중하고 이후 과제는 그때 가서 협의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굳이 이번 접촉을 비밀리에 진행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남북관계를 가급적 투명하게 가져가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기조도 고위급 접촉 공개 방침에 반영됐을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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