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종선 기자 = 누적 관객 수 1134만 597명, 매출액 826억 4402만원. 지난해 12월 18일 개봉한 영화 ‘변호인’이 12일 현재 기록 중인 수치다. 어려운 여건에서 쉽지 않게 세상에 나온 영화를 ‘천만 영화’로 만들어 준 건 물론 관객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영화라는 오해의 시선 속에서 영화를 제작한 위더스필름의 최재원 대표를 비롯해 고인을 ‘빙의’했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소름 돋는 연기를 보여 준 배우 송강호, 무섭도록 치열한 연기를 선사한 김영애 곽도원 오달수 임시완 배우와 장면마다에 혼을 불어 넣은 스태프도 함께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각본부터 연출까지 ‘변호인’의 탄생 전 과정을 책임진 양우석 감독을 최근 서울 통의동 카페에서 만났다.
△ 왜 변호인 ‘노무현’이었나
영화 ‘변호인’은 후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부산 변호사 시절, 그 중에서도 1981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세상의 관심이 그에게로 줌인 되기 전, 시위대 맨 앞에서 메가폰을 잡던 민주투사도 아니고 5공 청문회에서 재벌회장에게 호통을 치고 동료 국회의원들을 꾸짖던 청문회 스타도 아니고 젊은 검사들과 TV토론을 벌이던 혁신적 대통령도 아닌, 그 이전의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러한 행적이 가능한 인물이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일종의 ‘프리퀄’ 스토리다.
“영화든 소설이든 제가 어떤 그릇에 담아 이 이야기를 대중에게 하게 될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이 스토리를 구상했던 건 20년도 더 된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갈라파고스의 시기’라고 부르는데요, 짧은 시기지만 한 인간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고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 일어나는 시기,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영향을 주는 시기에 그런 이름을 붙였는데요. 1981년 세무변호사였던 노무현 앞에 벌어진 사건을, 1988년 열린 5공 청문회에서 국회의원 노무현을 보게 된 양우석이라는 대학생이 얘기하는 겁니다. 두 사람의 갈라파고스 시기가 영화 안에서 만나는 거랄까요.”
양 감독은 노무현 개인에 집중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몇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한 인물을 통해 그 시대의 특성과 삶을 반추해 본 것이라는 설명이다. 불순한 세력이 불순한 의도로 간첩단을 만들었다고 국가가 말하면 그대로 믿었던 평범한 사람이 나름 잘 나가던 세무변호라는 생업을 때려치우고 인권변호사로 8년의 시간을 달리게 했던 힘, 스타 정치인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기득권의 반대편에 서게 했던 힘이 시작되고 길러진 시기에 집중한 것이란다.
△ 데뷔작으로 ‘천만 감독’이 되다
1969년생, ‘변호인’이 지난해 말 개봉했으니 마흔다섯에 영화감독이 됐다. 빠르다 해도 삼십대 후반 데뷔가 일쑤인 영화감독의 길을 감안해도 늦은 감이 있다. 오랜 숙성이 가져 온 예정된 결과였을까, 천만 관객이 양우석의 첫 연출작을 선택했다. 데뷔작으로 ‘천만 감독’이라니 행운의 사나이다.
“글쎄요, 워낙 긴장을 많이 했던 터라 ‘기쁘다’고 쉽게 말이 나오질 않네요. 저뿐 아니라 배우도 스태프도 모두 긴장했어요. 오해와 편견이 많은 부분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가져왔잖아요, 시대와 그분(노무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통해, 그를 통해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시작은 했지만 의도와 달리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진흙탕 밭’으로 들어 갈까봐 긴장했습니다. 천만 소감은 이렇게 대신하고 싶어요. 영화를 보고 나오시는 관객, 가족과 함께 보고 나오는 분들의 표정을 보며 ‘우려했던 바보다는 소망했던 바로 나아갔구나’ 싶었어요. 참 다행이다,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양 감독은 ‘변호사’ 노무현이 약자의 ‘변호인’이 되는 이야기를 웹툰으로 만들 요량이었다. 우연히 최재원 대표를 만난 게 영화의 시작이었다. ‘줄거리나 한 번 보자’던 최 대표는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 왔고, 그 때까지만 해도 양 감독 자신은 ‘좋은 감독이 연출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민감한 영화의 감독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취지를 가장 잘 잘 이해하는 사람이 연출하자는 최 대표의 제안에 ‘독립영화로라도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감독직을 수락했다. 우연의 순간들이 ‘천만 영화’의 필연을 만들고 있었다.
△ 송강호의 재발견
‘변호인’은 송강호라는 배우를 믿고 보는 영화다. 묵직한 신뢰를 주던 송강호라는 명배우도 나무에서 떨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신세경과 연인으로 등장한 ‘푸른 소금’, 이나영과 형사콤비를 이뤘던 ‘하울링’은 팬의 입장에서 지우고 싶은 영화들이다. 2013년, 송강호는 다시 벌떡 일어섰다. 비단 영화 ‘설국열차’와 ‘관상’을 순서대로 934만, 913만의 관객이 봐서가 아니다. ‘변호인’ 한 편으로도 충분하다. 송강호는 가진 것 없는 나의 변호를 위해 제 일처럼 나서 줄 것만 같은 ‘변호인’ 송우석으로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섰다.
“왜 만나는 줄도 모르고 송강호 선배를 최 대표와 함께 만났어요. 며칠 뒤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라고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제작 바른손·대표 최재원) 출연이 인연이 돼서 송 선배랑 최 대표가 다시 일하게 됐다 싶어요. 저로서는 ‘로또’ 맞은 거지요.”
감독 양우석은 ‘푸른 소금’과 ‘하울링’의 부진에 대해 배우 송강호의 변호인을 자청했다.
“송 선배의 연기는 만족이 아니라 경탄의 경지였어요. 영화에 대한 책임감 너무 크더라고요. 영화는 나의 작품이다, 이 작품이 꼭 좋은 결과로 관객들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책임감이 대단해요. 상대배우든 연출자든 같이 일하는 사람은 다 배려해요. 만일 (지나간 영화에) 미진한 성과가 느껴진다면 배려 과정에서 본인이 희생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송 선배 표현에 의하면 ‘텍스트가 탄탄해서 마음 놓고 할 수 있겠다’ 정도의 수준이었는데도 어마어마하게 배려하더라고요. 초보 감독인 저도 배려하고, 다른 배우들에게도 어떤 때는 자극으로 어떤 때는 배려로 대했고요. 촬영해서 영광 그 자체인 현장이었습니다.”
△ 상식 그리고 이해와 성찰
간단치 않은 영화를 두고 주제의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달라고 청했다. 무리한 요구에 양 감독은 짧지만 깊은 답을 돌려줬다.
“한 단어로 하면 상식이고, 두 단어로 하면 이해와 성찰입니다. 극중 송우석이 말하는 게 다른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법정에서도 상식이 통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거죠. 이러한 외침이 더 큰 설득력을 얻는 건 ‘돈이 최고 아냐?’라며 살아왔던 그였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우리랑 아주 비슷한 생각의 사람이잖아요, 이 영화가 각자의 우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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