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재의 골프 노하우>(31) 당당한 패배는 승리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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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2-1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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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는 룰 빼면 ‘시체’…멀리건 자주 쓰면 장난 돼버려

 

                                                                                             [사진제공=골프다이제스트]



지난해 박인비 선수는 여자골프 최초의 그랜드슬램 문턱까지 갔지만 결국 달성하지 못했다. 5개의 메이저대회 중에서 첫 3개를 우승했으나 그 이후 2개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넷째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쏟아진 언론의 관심은 분명 박인비 선수의 평정심을 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골프 역사상 그랜드슬램의 기록은 딱 한 번 있다. 1930년 바비 존스는 당시의 4대 메이저대회인 US오픈 US아마추어오픈 디오픈(브리티시오픈) 브리티시아마추어오픈 4개 대회를 한 해에 우승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존스는 평생 아마추어골퍼 신분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가 달성한 그랜드슬램은 아마추어골퍼로서 참가할 수 있는 4대 메이저대회를 한 해에 모두 우승한 것이다. 당시 프로골퍼들에게 메이저대회는 디오픈(1860년) US오픈(1895년) USPGA챔피언십(1916년)이 있었고, 존스가 은퇴한 후에 오거스타내셜널골프클럽을 만들어 개회한 마스터스(1934년)를 포함하여 오늘날 남자골프 4대 메이저대회가 되었다.

존스는 이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스스로 벌타를 매긴 유명한 일화도 남겼다. 1925년 US오픈에서 월터 헤이건과 함께 1라운드 플레이를 하던 존스는 11번홀을 마치고 미국골프협회(USGA) 경기위원과 헤이건에게 자신이 어프로치샷을 하기 전에 볼을 움직이게 했으므로 1벌타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헤이건은 존스와 경쟁자이긴 했지만, 그런 것으로 인해 이득을 볼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목격하지도 않은 사실이어서 존스의 주장을 수긍하지 않았다.

라운드를 다 마치고 존스는 경기위원과 말다툼을 하게 된다. 경기위원은 “아무도 보지 않았는데, 왜 자꾸 쓸데없는 주장을 하느냐?”는 것이었고, 존스는 “내가 룰을 어겼으니 1벌타를 먹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결국 1벌타를 추가한 스코어카드가 받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존스는 결승 연장전을 허용했고, 연장전에서 패해 2위를 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 존스의 스포츠맨십을 높이 평가했지만 정작 존스 본인은 “나를 칭찬하는 것은, 내가 은행 강도를 하지 않았다고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1926년 US오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라운드 15번홀에서 퍼팅 어드레스를 한 순간 강풍이 불어 볼이 움직였다.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도 존스는 스스로 1벌타를 부여했다. 그러고 그는 우승했다. USGA는 매년 한 명의 골퍼를 선정하여 스포츠맨십상’을 수여하는데, 이 상 이름이 ‘바비 존스 어워드’라고 한다.

몇 해전 구력이 꽤 오래된 분과 라운드를 했는데, 라운드중 룰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룰에 대한 그 분의 신조는, 굳이 남이 보지 않아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면 세상 모두가 아는 것 아닌가?’였다.

골프는 룰 빼면 시체다. OB난 볼을 남이 안 본다고 굳이 쳐서 파를 해 본들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볼이 움직인 것을 안 움직였다고 끝까지 주장하다가 나중에 비디오 판독으로 움직인 것이 드러나면 그 무슨 창피인가? 좀 더 좋은 위치에서 플레이하려는 마음에 적당히 볼을 드롭했다가 갤러리의 제보로 망신을 당한 프로도 있다.

골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 프로들은 모두 ‘바비 존스 어워드’를 수상한 경력이 있다. 게리 플레이어(1966년), 아놀드 파머(1971년), 잭 니클로스(1975년), 벤 호건(1976년), 톰 왓슨(1987년), 낸시 로페즈(1998년), 로레나 오초아(2011년), 아니카 소렌스탐(2012년).
그런데 골퍼로서의 재능과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아직 이 상을 수상하지 못한 유명한 골퍼가 있다. 누군지는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물론 호건처럼 전성기가 훌쩍 지나서 수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메이저대회 우승을 간절히 원하는 타이거 우즈는 우선 이 상부터 먼저 노려보는 접근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크린 골프가 유행이다. 스크린 골프는 필드 골프를 좀먹는 악이다. 스크린에서 한 라운드에 멀리건 3개를 쓸 수 있는 것에 익숙해진 골퍼들이 필드에서도 똑같이 멀리건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골프의 참 맛을 느끼려면 절대 멀리건을 멀리해야 한다. 멀리건을 자꾸 쓰면 골프가 장난이 돼버린다. 그렇게 해서 이긴 것은 이긴 것이 아니다. 당당한 패배는 승리보다 아름다운 법이다.
 
골프칼럼니스트 (WGTF 티칭프로, 음향학박사)
yjcho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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