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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 회장(왼쪽)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아주경제 채명석ㆍ정치연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또 다시 고개를 크게 떨궜다.
27일 대법원 1부는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의 원심을 확정했다. 최 회장은 SK 계열사에서 펀드 출자한 돈 465억원을 국외로 빼돌려 선물옵션 투자에 사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과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징역 3년6월이 확정됐다. 최소 3년간 최 회장 형제는 경영일선에 복귀할 수 없다. 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두 사람의 장기간 공백은 SK그룹 존립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 이제부터가 사실상 위기다.
SK그룹 관계자는 “큰 충격이다. 매연보다 시커먼 안갯속 한가운데에서 방향 잡기는 커녕 걸어갈 수 있을지 조차 알 수 없게 됐는 상황이 됐다”며, “솔직히 ‘이제는 그만하겠지’라는 기대도 했는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신사업 뿐만이 아니라 그룹 운영 전반에 걸쳐 최 회장 없이 어떻게 해야할지 눈 앞이 캄캄하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2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검찰과의 끈질긴 악연은 ‘최 회장 실형’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회장 취임 전부터 현재까지 그의 발목을 끊임없이 잡고 늘어진 것은 다름아닌 검찰이었다.
1994년 8월 당시 최 회장 부부의 20만 달러를 미국 캘리포니아주 11개 은행에 불법예치한 혐의로 악연은 시작됐다. 1998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인 2003년에는 소위 말하는 ‘SK사태’가 불거졌다. 최 회장과 손길승 SK그룹 회장 등이 배임과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기소와 구속, 실형 선고 등 위기를 맞았지만 최 회장은 풀려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순간 속에 이런저런 갖가지 생각이 머릿 속에 교차하면서 최 회장의 장탄식은 길고도 깊었다.
지난 11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원 LIG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은 데 대해 재계에서는 정부가 재계에 화해의 손을 내민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번 판결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SK그룹에서도 최 회장의 복귀를 염두에 두고 조심스레 경제 활성화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준비를 다져나가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두 회장의 집행유예 소식은 최 회장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재벌 총수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대해 국민들이 재판부의 결정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더 강해지는 분위기로 반전된 것이다.
대기업 고위 임원은 “더 이상 재벌 총수에 대한 관용은 없어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최 회장은 국내 3위 대기업 총수라는 점에서 본보기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어 사정당국에 대한 재계의 눈치보기는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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