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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기목사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독립기념관(김능진 관장)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전덕기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특별기획전을 오는 31일까지 한달간 펼친다.
전덕기 선생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등 관련자료 11점을 선보인다.
독립운동가이자 목사인 전덕기 선생은 17세 때 당시 정동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하던 스크랜턴(W. B. Scranton) 선교사를 만나 1896년 기독교에 입교했다. 1902년에는 정식 선교사가 되어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민중 목회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며 독립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1903년에 상동교회 안에 ‘엡윗 청년회(Epworth League)'를, 1904년에는 중등교육기관인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을 조직하였다. 전덕기 선생이 이끄는 상동청년회(1903년)와 상동청년학원(1904년)은 을사늑약 반대 투쟁 등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新民會) 창설과 조직의 인적․물적 토대가 되었다. 전덕기 선생은 신민회 발기인 7명 중 한 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민회 운영에 필요한 재무를 총괄하였고 신민회 중앙총회 평의원 겸 서울지역 신민회 총감(總監)으로 활동했다.
국권을 강탈한 일제가 1911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사건을 조작하고 많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면서 신민회 조직이 와해되었다. 이때 전덕기 선생은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구속된 독립운동가를 대신하여 오산학교(五山學校)와 대성학교(大成學校)를 운영하는 한편 와해된 신민회 조직을 재정비하는 데 힘을 쏟았다.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나라와 민중을 위해 헌신한 전덕기 선생은 1914년 3월 순국했다. 정부는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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