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작품을 보며 감동할때 그는 작품보다는 그 작가의 손을 상상한다고 했다.
도예가 이헌정(48)이다. 그는 좀 비틀어졌다. 작품도 그렇다. 깨지고 찌그러진 달항아리를 보란듯이 전시한다.
정통 도예가들이 기겁할 일이다. 가마에서 깨지고 뭉개나온 자기는 그 자리에서 깨트리는게 미덕이자,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전통 자기장들에겐 도발적이다.
브래드 피트가 지난 2009년 6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한 아트페어에서 한눈에 반해 직접 구입한 이헌정의 작품은 콘크리트와 세라믹으로 만든 테이블이었다.
오는 13일 박여숙화라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만난 작가는 이 타이틀에 대해서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옆에 있던 박여숙 대표는 "브래드뿐만 아니라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미국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인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 인도의 국민 작가 수보다 굽타 등도 작품을 사들인바 있다"며 추켜세었다.
이미 외국 유명 인사들이 소장할 정도로 인기가 높지만 '도자기의 나라'인 우리나라에선 아직 실험과 예술의 경계에 있다.
"전통 공예를 하는 사람들이 보면 '신성한 달항아리에 무슨 짓이냐'. 하다하다 별 짓 다한다"는 지적이 온다면 어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분명 전통도예가들과 충돌이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가 충돌을 유도했으면 좋겠다"며 여유를 부렸다.
건장한 체격의 이 작가, 겉으로 보이기에도 뚝심있어 보인다. 말(설명)도 잘한다. 예술의 대해, 자신의 작업에 대해, 또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예술은 결과가 아름다운게 아니라 과정의 프로세스의 가치가 묻어있을때 관념성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예술가의 삶이 집적되어 있을때 아름다운 것이죠."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세라믹 오브제위에 옻칠과 나전을 접목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옻칠을 하면서 바보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10번이상 손으로 광택내고 색을 올리는 반복을 하면서 이짓을 왜하는가에 대해 고민했죠."
하지만 옻칠을 하면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친분이 있던 무형문화재 손대현 장인의 아들과 함께 진행한 옻칠작업에서 깨달았다. "대충가자"는 작가와 "용납이 안된다"는 서른초반의 옻칠장의 고집과 수없이 많은 양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작업과정에서 그는 "명상과 참선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작업은 전통의 가치와 현대적인 특성을 연결시키는 프로세스가 담긴 노동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일그러지고 깨진 달항아리를 왜 전시하냐고 묻자 "조선의 달항아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건 이시대의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이 아니죠.'라는 반문이 돌아았다.
그는 "달항아리가 하나의 트렌드거나 동양 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불만"이라며 "일그러진 달항아리 작품은 이런 트렌드를 비틀어보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도 제어하는 것보다 (자연)의 일부가 되려는 과정이 더 힘이 든다고 했다. 불가마나 도자기를 굽거나 옻칠을 하하는 작업에서 고정관념적인 완벽성을 추구할 생각이 전혀 없다.
"완벽한 기술을 보여주려는 일본이나 자연보다 큰 존재를 선호하는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어느 순간 놔버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감성이 존재하죠. 완벽한 원을 추구하다가 어느 순간에 던져 버리는 감성이요. 그런 면에서 달항아리가 가진 감수성에서 배우는 면이 많아요."
홍익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조각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건축에도 관심이 많아 2008년 경희대학교 건축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공부했다.
도자벽화인 청계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제작과 양평 강하미술관의 설치작업을 진행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의분청사기 특별전'에서 한국 도예가 최초로 전시를 한 바 있다.이번 전시에는 상품화할 계획을 잡고 만든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로시카처럼 사이즈만 다른 그릇이 여러 개 포개져 있는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제 자신의 정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도예가인지 조각가인지, 제가 만드는 것이 그릇인지 조각인지 가구인지 애매하게 하는 거요."
전시 타이틀 '여행'은 새로움을 시도한다는 뜻이다. 이번 전시는 그의 '26번째 여행-손' 전시다. 28일까지 이어진다. (02)549-7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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