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바람둥이거나 몰염치한 전근대적 가장이었다면 차라리 쉬웠을 불륜남 연기, 지진희는 최재학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지난 5일 서울 청담동 카페에서 만난 지진희는 마치 최재학의 변호사라도 된 듯, 지난달 24일 종영한 드라마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그저 최재학으로 보였다.
“재학은 상황을 냉정하게 정리하죠. 이성이 앞서는 사람이에요. 무턱대고 주먹을 날릴 게 아니라 왜 이런 상황이 됐나를 생각하는 인물이고요. 재학이에게 은진이는 계획하지 못했던 사랑, 상상하고 예측하지 못했던 사랑이에요. 내 몸이 주체하지 못하는 사랑, 겪어 본 적 없는 사랑에 당황했지만 합리적으로 결정하죠. 어쩔 수 없어 사랑하고 말았지만 가정을 깰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끝내야 한다고 마음을 먹어요. 그렇게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아내 미경이 먼저 밝혀내요. 재학은 미경에게 되레 따지죠. 오히려 선을 넘은 건 너다, ‘밝혀내는 과정이 부부의 기본 선을 넘었다’라고요. 알아요, 정말 얄밉죠? 하지만 재학은 분명 선을 지켰습니다. 육체적으로도 은진과 선을 넘지 않았고, 가정을 지켰어요.”
캐릭터에 대한 깊은 체화를 보여 주는 지진희에게 처음부터 최재학을 받아들였는지, 그의 생각에 쉽게 동의할 수 있었는지 재차 물었다. 대답은 연출가 및 작가와 대별되는 배우의 역할에 대한 것으로 대신했다.
드라마 속에서 최재학은 아이와 레고를 하고 시간이 나면 록 클라이밍(rock climbing)을 한다. 실제 지진희의 모습이기도 하다. 먼저 레고 보따리부터 풀었다.
“드라마 찍기 전부터 작가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레고와 클라이밍을 최재학에 연관시켜 주셨어요. 레고 장면에 대해선 의미가 커요. 저는 사람이 손으로 뭔가를 만든다는 일을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공예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요. 지금 공예 일만 해서는 직업으로 온전히 밥벌이가 안 돼요. 전반적으로 삶이 넉넉해야 공예에도 관심을 갖는데, 다들 살기가 넉넉지 않은 거죠.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공예를 도외시하고 손을 놓아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뭔가를 직접 만들지 않는 인간, 문명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작게나마 공예하시는 분들에 대해 지원도 하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중과부적이에요. 일단은 아이들이 레고 놀이를 하면서라도 스스로 뭔가를 만드는 작업, 머릿속에 있는 걸 세상에 꺼내 놓는 작업을 이어가길 바라요. 레고가 아기가 삼켜도 목에 걸리지 않는 모양이라는 거 아세요? 이런 게 다 공예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에요. 놀랍지 않나요?”
지진희의 록 클라이밍 장면은 40대 최재학의 멋을 부각시키는 데 활용됐다.
“출연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부터 헤어와 의상, 스타일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어요. 은진이가 어리고 남편도 있고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있는데 왜 나이 많은 이 사람한테 반할까, 시청자가 설득되셔야 하는 거잖아요. 여자가 반하는 부분이 뭐가 있을까, 40대는 40대만의 매력이 있거든요. 제가 내린 결론은 최대한 일을 완벽하게 하는 사람, 그래서 옷도 완벽하게 입으려 했어요. 저도 나름 자기관리 철저한 사람이라 철저하게 준비했죠. 운동, 음식 조절,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클라이밍까지 모든 게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로 화면에 드러난 겁니다.”
육체적 끌림보다는 인생행로에서 벌어지는 ‘사고’와도 같은 두 번째 사랑, 그 과정에서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이 겪게 되는 삶의 고민들을 담아냈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불륜 소재 드라마로 기억한다. 하지만 주연배우였던 지진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 성장에 관한 드라마다.
“주제는 성장이에요. 나이는 많은데 애 같은 사람 많잖아요. 정신적으로 철이 덜 들어서 뿐 아니라 우리 사회는 어른이 되는 문턱이 높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해요. 요즘 20대가 뭐예요, 30대에도 놀고 있는 사람 수두룩해요. 취업하기, 먹고 살기 너무 힘든 상황이죠. 공부라는 것도 그래요,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어릴 적부터 서른이 넘도록 공부해요. 무슨 이런 사회가 있어요, 환장할 노릇이죠. 뭐, 저도 그렇게 공부시키며 키우고 있지만요. 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사람, 큰 인물이 된 사람들의 과거를 돌아보면 부모님이든 누군가든 이미 남과 다른 선진교육을 시켰더라고요. 당시에는 시류를 따라가야 할 것 같고, 남이 휴대전화 바꾸면 바꿔야 할 것 같지만 중심을 잡아야 해요. 그게 결국 직장생활이든, 결혼생활이든, 육아든 제대로 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진희는 올해 2편의 중국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중국배우 장쉐여우와 장첸, 슈퍼주니어 최시원과 협연한 ‘적도’, 중국의 섹시배우 에바 후앙과 주연한 멜로영화 ‘길 위에서’가 그것이다. ‘적도’는 핵무기를 소재로 한 범죄액션, ‘길 위에서는’는 3D 멜로드라마인데 지진희는 “3D로 펼쳐지는 멜로가 멋있을 것”이라며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했다. 드라마 ‘대장금’과 ‘동이’를 통해 아시아 스타로 자리 잡은 그에게 거세지고 있는 중국발 한류열풍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물었다. 산을 오르는 산악인다운 답이 돌아왔다.
“욕심 부리지 않으며 물 흐르듯 하나씩 하나씩 얻어 갈 겁니다. 욕심 부리면 탈난다는 거 진리거든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저는 제 페이스대로 산을 오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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