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내통신사가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통해 입수한 미군 비밀해제 문서에 따르면 미군 동남아 번역·심문소(SEATIC)가 1945년 4월 버마에서 체포된 일본군 포로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이 군대 위안부를 운영한 사실을 파악했다.
미군 당국은 포로를 상대로 '부대시설'(amenities)의 하나로서 위안부("comfort girls")를 두고 있는지를 심문했고 그 결과 만달레이주 메이묘에 일부 위안부를 두고 있었다는 답변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문서는 당시 위안부의 화대가 3.5∼5엔이었으며 일본군 병사의 월급은 24엔이었다고 밝혔다.
이 포로는 매달 10엔을 저축하고 나머지는 궐련을 사는데 썼으며 자신은 이용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 통신사가 입수한 또다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기밀해제 문서에 따르면 1945년 4월25일 미군 정보원이 중국 여자간호사를 인터뷰한 결과 일본 육군 군의관이 매주 금요일 중국 만주의 위안소를 방문해 '여성(위안부)'들을 상대로 정기 검진을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위안부 운영 사실에 대한 일본의 전면부인이 거짓으로 밝혀진 셈이다.
미군 당국은 포로를 상대로 '부대시설'(amenities)의 하나로서 위안부("comfort girls")를 두고 있는지를 심문했고 그 결과 만달레이주 메이묘에 일부 위안부를 두고 있었다는 답변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문서는 당시 위안부의 화대가 3.5∼5엔이었으며 일본군 병사의 월급은 24엔이었다고 밝혔다.
이 포로는 매달 10엔을 저축하고 나머지는 궐련을 사는데 썼으며 자신은 이용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 통신사가 입수한 또다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기밀해제 문서에 따르면 1945년 4월25일 미군 정보원이 중국 여자간호사를 인터뷰한 결과 일본 육군 군의관이 매주 금요일 중국 만주의 위안소를 방문해 '여성(위안부)'들을 상대로 정기 검진을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위안부 운영 사실에 대한 일본의 전면부인이 거짓으로 밝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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