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게임에서 이길 공산이 큰 측은 아무래도 러시아다. 이 게임을 동전 던지기에 비유해 보면 마치 앞면은 러시아의 승리, 뒷면은 크림자치공화국의 패배인 동전을 던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16일에 치러질 주민투표의 결과가 그만큼 빤하다는 얘기다.
결과와 무관하게 이 투표는 불법이고 헌법 위반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여진다. 우크라이나 헌법은 명확히 “주민투표는 국민 300만 명 이상이 요청할 경우 성사되며, 우크라이나 전체 국민이 참여해야 하며 우크라이나 의회만 실시할 수 있다”고 못 박고 있다. 이번 주민투표는 그러나 위의 조건에 어느 하나도 부합되지 않는다.
이번 투표엔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 군대가 점령한 지역에서 러시아 무장 군대가 지키는 가운데 어떻게 정당한 투표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인가? 영국도 올해 중요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9월 18일 만 16세 이상의 스코틀랜드인에게 영국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묻는 총선거다. 공정하고도 자유가 보장된 상황에서 국민투표가 이뤄지도록 영국은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국민투표의 특성상 공정함과 자유로운 선택은 기본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16일 치러질 크림반도 주민투표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지난 30년간 우리는 냉전 시대의 긴장과 불신을 떨쳐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영국은 러시아가 그간 국제사회 번영을 위해 강력하고도 긍정적인 기여를 해 왔다고 인정한다.
과거의 참담한 대립을 반복하지 않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많은 국제조약들이 체결됐으며 국제기구들도 설립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가 영향력 있는 회원국으로 속해 있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및 유럽의회와 같은 기구들 역시 각국이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며 소수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 공정성 감시 담당 기구인 OSCE는 이번 크림자치공화국 주민투표를 불법으로 규정했으며 투표 감시단 역시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 문은 열려 있다. 러시아가 외교적 해결을 위한 노력에 진지하게 동참하고 평화적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국제기구와 협력할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은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 및 자주권에 대한 명백한 위반 행위다. 더구나 이는 지난 1994년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위반이다. 우크라이나는 이 양해각서에 의해 모든 핵무기를 포기했으며 이는 국제 핵무기 비확산 정책에도 중대한 기여를 했다.
우크라이나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러시아에 영국·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에 반(反)하는 위협을 가하거나 무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어떤 무력도 자기 방어의 목적 혹은 기타 유엔헌장에 따른 목적 이외엔 사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이 양해각서의 명백한 의무조항을 무시하기로 한 결정은 매우 위험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한국·미국 양국은 물론 국제사회 모두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이러한 행동은 결국 북한 정부에도 면책 조항을 제공하는 위험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촉구한다. 크림반도·우크라이나·유럽 그리고 러시아 모두의 이익을 위해 그의 권한을 행사하고 위기를 종식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러시아가 16일 치러질 예정인 어불성설의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투표 결과는 법적 효력이 없을 것이며 정당성도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그 결과를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주민투표를 당장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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