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관으로 열린 한국은행 총재 지명자에 대한 청문회는 '정책 검증'의 장이었다. 통화정책 수행 능력과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주열 후보자의 답변은 중립적이었다. 현 김중수 총재와 명확히 선을 긋는 한편,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 "가계부채, 위험수준 아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가계부채에 대한 한은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현재 1021조원 가량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상태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이 후보자에게 "한은의 공식적인 입장은 가계부채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저소득층 부채는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 후보자는 "금융시스템 리스크 차원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소득 상위 20% 계층이 전체 부채의 47%를 차지하고 있어, 부채를 감내할 수 있는 소득층이 절대 규모를 차지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그는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는 금리정책보다는 사회안전망 측면에서 정부가 해야 한다"면서 "가장 좋은 것은 일자리 증대"라고 말했다.
또한 이 후보자는 "가계부채 해소와 관련해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여력은 상당히 제약돼 있다"면서 "한은이 1차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바는 안정적인 성장세가 지속되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하고, 제한된 수단이지만 금융중개지원대출 등 정부 정책을 보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참고인으로 동석한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부채 수준의 위험성에 대해 "고소득층에 부채가 몰려있다는 것만 가지고 위기 가능성이 낮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질적 측면에서 가계부채는 우려할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대 수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관련, 디플레이션(장기간 물가 하락)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현재 한은이 명시한 물가안정목표제 범위는 2.5~3.5%로, 현 수치보다 높다.
이 후보자는 우선 현재의 물가 수준에 대해 "1%대로 하락한 것은 중앙은행이 제어할 수 없는 공급적 문제"라며 "중기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어느 정도 예상한 범위"라고 봤다.
저물가를 감안해 통화정책을 재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새누리당 이만우 의원의 질문도 있었다. 이에 이 후보자는 "물가가 당장 염려할 상황이 아니므로 성장을 염두에 둬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지금 통화정책 기조가 경기회복을 저해하는 수준인지는 금통위가 지금껏 상황을 잘 고려해 판단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실업률 등을 내세워 통화정책 방향을 언급하는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안내)' 도입에 대해서는 "포워드가이던스는 분명 참고할 만한 커뮤니케이션의한 방법이고 정책수단"이라며 "(선진국과)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 '매'도, '비둘기'도 아닌 성향…"실기 논란은 소통의 문제'
시장에서도 평가가 엇갈렸던 이 후보자의 성향은 이날 답변에서도 다소 '중립적'이었다. 이 후보자는 모두 발언을 통해 "물가안정은 변함없는 중앙은행의 가치요 사명"이라면서도 "물가와 금융안정의 균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금리 결정 시 가계부채도 고려하지만 물가, 경기, 금융시장 상황을 전반적으로 감안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시종일관 '균형'을 강조했다.
정부와 한은의 정책목표가 충돌할 경우에 대해서는 "정부나 한국은행이나 주어진 책무가 있고 모두 국가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는 게 목적"이라며 "정책 효율성을 높이려면 양 정책의 조화가 필요한 것도 맞지만 중립성을 지키는 범위에서 정부에 협조해 최적의 조합을 찾겠다"고 답했다.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는 선별해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같은 후보자의 답벼에 '매파'와 '비둘기파'로 갈리던 시장의 여론은 '중도파'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불통'의 대명사로 지적되던 현 김중수 총재의 문제점에 대해 짚는 한편, 향후 한은의 역할 확대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시장에서 금리 조정 타이밍을 놓쳤다는 이른바 '실기' 논란이 이는 것과 관련, 이 후보자는 "지난해 금리 인하를 두고 시장에서 기대에 어긋났다는 평가를 하는 것을 보면 소통의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2012년 한은 퇴임 당시 김중수 총재의 파격 인사를 두고 중앙은행의 가치와 규범이 무너졌다며 비판한 적 있다. 이날 그는 "지금도 그 같은 시각에 변화는 없다"면서 "총재로 부임하게 되면 안정성을 지속해 나간다는 원칙 하에서 인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한 이 후보자는 한은의 역할이 제한돼 있으며, 금융안정 기능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기관 간 협의체 구성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한은의 목적과 수단 간 괴리가 있다"면서 "(금융안정)협의체를 만들어 정보도 공유하고 정책수단도 상호 보완적으로 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이 후보자는 향후 염두에 둬야 할 사안으로 ▲물가안정과 성장의 균형있는 조합 모색 ▲국민의 신뢰 ▲글로벌 금융협력 지속을 꼽는 한편 소통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