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Welcome 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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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3-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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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경택 감독 "언젠가 브로드웨이 막고 조지워싱턴 브릿지 위로 태극기 단 전투기 출격시킬 것"

곽경택 감독.[사진=이형석 기자]


뉴욕대 영화과 졸업을 앞두고 ‘영창 이야기’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4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건만 아직도 영어가 어렵고 정서가 동화되지 못한 탓인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유학을 한 내가 졸업작품 소재로 선택한 것은 결국 군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한국 이야기였다.

교민들을 상대로 연기자 오디션을 하고 방학 때 부산 자갈치에서 사 온 군복과 직접 만든 헌병 헬멧 등을 동원해 나름 최선을 다해 영화를 찍었다. 교내의 각종 경쟁을 뚫고 교수들이 추천할 만한 독특한 소재의 영화 한편을 손에 쥔 나는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웬걸? 분명 후보 1순위였던 내 영화는 아예 경쟁에 낄 자격조차 없다는 통보가 왔다. 이유인 즉, 영주권도 없는 외국 유학생의 신분인데다가 소재와 언어조차 미국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내 스스로가 미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고, 어릴 때부터 동경해 오던 아카데미시상식이 깐느나 베니스처럼 세계인의 영화축제가 아닌, 단지 그들만의 ‘국내 영화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 늦은 문화적 충격을 더욱 깊게 했던 점은 영국과 호주 등 소위 영어권 영화들은 미국 아카데미에서 자국 영화로 취급한다는 사실이었다.

아! 그래서 아카데미시상식에 ‘외국어 영화상’이라는 것이 따로 있었던 거구나. 결국 부모의 등골을 빼 비싼 학비를 내고, 졸업식 때 미국 애국가를 들었어도 내가 만든 영화는 결코 그들의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

‘영화’는 미국의 국책 사업 중 하나다. 미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세계시장에 미국 스타들의 긍정적 이미지를 심는 데 기여한다고 판단되면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을 퍼 붇는다. 그래야, 그 영화를 본 세계의 사람들이 역시 미국은 악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나라이고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는 미국 스타들이 월드 베스트라고 생각할 테니까.

수년 전, 내가 ‘태풍’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오랫동안 정치적으로만 인식되어 있던 한국 군인의 위상을 바로잡아 보고자 애썼을 때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정부와 국방부의 홀대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의 도시 부산에서조차도 광안대교 촬영은 불가 방침이 전달되어 왔다. 물론 나의 접근방식이 정치적이지 못했을 수도 있고, 북한의 핵이 민감했던 시절에 대한 불편한 소재가 걸림돌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나는 한국이 아닌 태국으로 가서 수십원을 지불하고 헬기와 군함에 태극기를 그려놓고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흥행이 부진해 아직도 그 빚을 갚느라 시달리고 있지만, 나름 작은 보상도 있었다. 당시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한 유명 평론가가 ‘태풍’을 보고 한국의 해군 장교로 등장한 이정재가 멋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미국의 스타들만 동경하며 살아왔던 나로서는 아주 작게나마 우리의 스타 한 사람을 그들에게 소개한 뿌듯함을 느꼈다.

요즘 연일 뉴스에서 ‘어벤져스2’의 한국 촬영에 대한 경제 효과가 어떻고 어느 대교가 통제된다는 소식을 듣는 내 기분이 과연 어떨까?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다행스럽다. 이제라도 영화라는 매체의 포괄적 영향력을 인정하는 분위기라 좋고, 이번에는 우리가 불편을 감수할 테니 부디 당신들 미국 사람들이 와서 신나게 찍고 가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두고 봐라! 우리도 언젠가는 맨해튼의 브로드웨이를 막고 조지워싱턴 브릿지 위로 태극기를 단 전투기를 출격시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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