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된 워크아웃 (중)] "제2 벽산건설 시간문제"...건설업계 도미노 파산 공포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4-04-07 07:5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수주 기반 건설업 특성 무시..."워크아웃은 불량 딱지"

아주경제 이명철 기자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건설업계와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나마 있는 기반마저도 깎아먹는 형태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건설사에 대한 워크아웃 제도 도입의 패착은 기본적으로 수주를 기반으로 하는 건설업계의 특성에 기인한다. 여기에 자산 매각을 통한 채권 회수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채권은행과의 불편한 동거가 건설사의 성장 동력을 훼손시킨다는 지적이다.

워크아웃에서 살아남지 못한 건설사가 결국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고, 이 가운데 벽산건설이 지난 1일 사실상 파산 선고를 받았다. 구조적인 문제란 점을 감안할 때 제2의 벽산건설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란 불안감이 건설업계에 확산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수주 기반 건설산업...워크아웃 ‘맞지 않는 옷’

건설업계에 워크아웃 개념이 도입된 건 2009년 건설사에 대한 신용위험평가가 실시된 이후다. 당시 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던 11개 건설사들은 그해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워크아웃은 채권자인 채권은행과 채무자인 기업이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업무협약(MOU)을 통해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MOU 당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계획이 정해지고 이에 대해 채권은행이 자금지원 규모를 결정하게 된다. 이후 정기적으로 추진 상황을 점검한다. MOU 당시 세웠던 목표를 달성할 경우 조기 졸업도 가능하다. 반대의 경우 워크아웃을 연장하거나 법정관리로 갈 수도 있다.

건설 전문가들은 수주를 기반으로 한 건설업계의 사업구조와 워크아웃은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영덕 연구위원은 “건설업체는 제조업과는 달리 제품을 만들기 위한 설비가 없어 개선방안이 자산매각과 수주계획 말고는 없다”며 “채권단 입장에서도 계획만 가지고서는 자금을 줄 수는 없다 보니 유동성 지원이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주→재무구조 개선'이란 선수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채권단이 이 과정에서 자금 수혈을 해야하는 데 워크아웃 딱지가 붙는 순간 신용도가 떨어져 수주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거액의 대출을 받아야 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은 꿈도 못꾼다.  

대한건설협회 SOC·주택실 이무송 과장은 “설사 공사를 맡게 되더라도 사업비를 선투입해야 하는데 채권단으로부터 꾸준히 자금을 투입받기가 쉽지 않다”며 “사업을 따내지 못하니 실적이 없어 재무구조는 갈수록 악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행 중이던 PF 사업의 경우 해당 사업의 대주단과 채권단의 갈등으로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어떻게라도 사업을 진행시키려는 채권단과 당장 원금을 잃는 것을 예방하려는 대주단간 알력이 생기는 것이다.

지난해 워크아웃 중이던 쌍용건설의 경기도 남양주 PF 사업장이 대표적이다. 쌍용건설은 이 사업 대주단이자 원금을 상환 받을 수 있는 비협약채권자인 군인공제회가 자금회수를 위해 가압류를 걸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제때 자금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공사 지연에 따른 피해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 안중언 정책국장은 “워크아웃 신청 후 자금 지원까지 평균 4개월 이상이 걸리면서 협력업체 대금과 채권 등은 규모가 더 커졌다”고 주장했다.

워크아웃 중인 K건설 현장 직원은 “워크아웃 결정이 나자마자 대금 체불을 우려한 협력업체가 일손을 놔버리면서 피해가 더 컸다”며 “공사 차질과 자금지원 지연 등이 맞물리면서 피해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법정관리·파산 내몰려, 업계 도미노 위기 우려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워크아웃으로는 건설사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규·기존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고 채권단의 자산매각과 인력유출로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어서다.

한국주택협회 정책실 김대성 부장은 “워크아웃이 도입되던 2000년대 후반에만 해도 제도 자체가 맞지 않아 반대하는 주장이 많았다”며 “건설사의 자산인 토지가 사업 재료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워크아웃을 겪었던 S건설 관계자는 “워크아웃은 출자전환을 통해 대주주가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 첫째 목표로 정상화보다는 축소, 신규보다는 관리에 치중하기 마련”이라며 “외부 수혈 없이 부채를 해결해야하니 자산을 파는 방법밖에 없고 이 돈도 채권회수에 쓰여 유동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풀이했다.

성장동력을 잃은 건설사는 파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건설협회 자료에 따르면 시공순위(2012년 기준) 100위권 내 건설사 중 워크아웃·법정관리인 곳은 18곳으로 1년 전보다 7곳이 줄었다. 하지만 이는 구조조정 중인 건설사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공순위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법정관리 중인 범양건영은 2012년 84위에서 110위까지 하락했고 83위이던 신일건업(법정관리)는 116위로 내려앉았다. 워크아웃인 삼환까뮤(120위)와 중앙건설(141위)도 1년 만에 100위권을 벗어났다.

김영덕 연구위원은 “워크아웃 후 법정관리에 갔다가 파산한 벽산건설의 전철을 밟는 건설사들이 늘어날 수 있다”며 “건설업을 오래한 중견 업체들이 무너지게 되면 협력업체의 부도 등 파장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2024_5대궁궐트레킹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