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한은맨’ 출신인 이 총재가 해외 데뷔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칠 경우 현오석-이주열 투톱체제는 향후 경제정책에서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이 총재는 지난 2일 한은 본관 8층 접견실에서 취임 후 현 부총리와 한차례 단독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경제가 미국 양적완화 축소, 중국 경제상황 등 대외 불확실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현 부총리와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지난 2007년 3월 부총재보로 부임한 이후 통화정책업무를 담당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살리는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위기관리와 업무 능력은 탁월하다는 평가다. 2012년에는 부총재 임기를 마치며 김중수 전 한은 총재 리더십을 정면으로 반박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현 부총리와 어느 정도까지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10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11개월째 동결시키며 돌출 변수는 없었다. 당분간은 현재 수준에서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취임 후 현장 분위기와 정무적 감각을 끌어올릴 만한 적응기가 짧기 때문에 외신 인터뷰 등에서 실수가 발생할 우려도 제기된다.
현 부총리 역시 지난해 부총리 취임 후 바로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김중수 총재와 금리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는데 G20에서도 어색한 관계가 이어졌다. 공식 일정 내내 서로 접촉을 피하며 불편한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 부총리와 이 총재가 이번 G20에서 공조체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두 분 모두 현재 한국경제의 방향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이 총재의 해외 데뷔전도 무난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은의 태생이 다르고 그동안 물과 기름 같은 사이를 유지한 만큼 분위기는 언제 급변할지 모른다는 시선도 나온다. 한은 내부 출신 총재가 선임되면 정부와 불협화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성태 전 총재와 강만수 전 장관은 대표적인 불협화음 사례로 꼽힌다. 강 전 장관은 정부가 통화나 환율에 강력히 개입해야 한다는 소신을 보인 반면 이 전 총재는 금리 인상 등 번번이 정부와 배치되는 행동으로 엇박자를 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와 한은 모두 경제 회복에 공감대가 있다. 어떻게 첫 단추를 채우느냐가 관건”이라며 “이 총재의 첫 해외 데뷔전이 이슈가 되는 것도 부총리와 호흡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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