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10일 담배제조사와 국가는 흡연 후 폐암에 걸린 환자들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암과 흡연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담배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한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폐암은 흡연으로만 생기는 특이성 질환이 아니고 물리적·생물학적·화학적 인자 등 외적 환경인자와 생체의 내적인자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발병될 수 있다"며 "어떤 개인이 흡연을 했다는 사실과 질환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할만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제조사인 KT&G와 국가가 담배의 유해성을 은폐하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으며, 담배에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제조·설계·표시상의 결함이 없다는 점도 인정했다.
즉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에 역학적 인과관계는 있지만 개별적 인과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다.
이번 판결은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는 국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의 최대 3000억대 소송에도 영향을 크게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공단 측은 이번 대법판결은 개인소송으로 결과에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판결 결과에 따라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보공단은 거대한 자본력을 가진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개인의 법적소송은 힘든 싸움이 필연적이며 따라서 공공기관인 건보공단이 직접 소송에 나섰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은 흡연으로 인한 건보재정 손실이 해마다 1조7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지난해부터 관련 소송을 치밀하게 준비한 만큼 오는 14일 소장을 접수하는 등 계획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변호사 도움도 받을 계획이다.
올 초 ‘국민건강보험 정상화 추진위원회’를 통해 산하에 법무팀, 대외협력팀, 홍보팀으로 나뉜 ‘흡연피해구제추진단’을 만들어 건보 재정손실에 대한 입법ㆍ사법적 대책도 마련했다.
한편, 소송을 제기한 흡연피해자들과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헌법에 보장된 생명권과 보건권을 무시하고 담배회사에 면죄부를 주는 대법원의 판결로 15년간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피해자들은 깊은 실망과 상처를 받게됐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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