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권이상 기자 =‘분양 업계 미다스(midas)의 손’ ‘악성 미분양 아파트 구원투수’
분양대행업체 김태석 이삭디벨로퍼 대표(사진∙44)의 별명이다.
이삭디벨로퍼는 2008년 설립돼 짧은 시간에 업계 선두로 발돋움했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서 25가구 분양으로 시작해 6년만에 매출이 100배로 늘었다.
한 대행업체가 2~3개 단지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상당히 드문 게 최근 업계 현실이다.
김 대표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도다. 그가 부동산에 눈을 뜨게 된 것은 2007년.
우연한 기회에 대행사에 몸담고 있는 지인을 통해 아파트를 판매하고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김 대표는 "'아 이런 사업이 있구나'하며 정신이 번쩍드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에게 분양대행은 '유레카'였던 셈이다. 김 대표는 "아파트는 그동안 건설사가 짓고 파는 줄만 알았는데 전문적인 분양대행사가 있는 줄은 그 때 처음 알았다"고 회고했다.
김 대표는 곧바로 직원 2명과 함께 대행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회사 문을 연 지 얼마 안돼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주택가격이 급전직하했다. 대형건설사도 미분양으로 골머리를 앓던 시절이다.
"위기는 기회다!" 김 대표는 역발상을 했다. 경쟁업체들이 손사레를 치던 사업영역을 개척하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행을 맡으면 공격적인 마케팅을 했다. 대대적으로 신문광고를 내고 바이럴마케팅 기업을 동원해 입소문을 냈다. 아파트 분양 신문광고를 한달에 50~60회 한 적도 있다.
수익이 줄더라도 다음 프로젝트를 수주하려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야 했다. 대행업체가 맡았는데도 미분양으로 남으면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분양이 더 어려워진다. 마지막 한 가구까지 책임을 져 줘야 신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양주 진접지구가 대표적인 예다. 광고비가 늘면서 사재를 털면서까지 광고를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진접지구를 털어내고 마포구 현석동 U아파트 등 고가 아파트들을 연이어 맡게 됐다"고 했다.
대행을 맡은 사업장은 김 대표의 손을 거쳐 재탄생됐다. 인테리어를 새로해 이전보다 상품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 또한 수익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는 "일단 팔려야 수익이 나는 것"이라고 했다. 단순한 진리를 실천했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아파트는 공급자(시공사) 입장에서가 아닌 수요자 입장에서 접근 하는 것 맞다”며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과감히 교체하고 예쁘게 꾸며 수요자들이 이 아파트에 살고 싶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디어 뱅크’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일반적인 마케팅 기법이 됐지만 계약 후 분양가 일부를 돌려주는 ‘캐쉬백(Cash Back)‘과 2년간 인근 전세시세에 맞춰 살아보고 분양을 결정하는 ‘애프터리빙(After Living)'제 등이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경기가 좋지 않으니 소비자들이 초기 계약금을 한 번에 넣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한 것”이라며 “이 두 마케팅은 도입 당시 경기불황 속 자금 여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사내에서 그는 '피곤한 일꾼’으로 통한다. 출근 현장과 퇴근 현장이 같은 적이 별로 없다. 하루 2~4곳의 현장을 발로 뛰며 직접 지휘한다. 최종 의사 결정권자가 현장에 있어야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와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성과에 따른 보상 원칙도 회사 성장의 비결로 꼽힌다. 실적이 좋으면 해당 프로젝트당 연봉에 버금가는 인센티브를 준다.
이삭디벨로퍼는 분양대행업계 최초로 자체 홍보실을 갖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분양을 맡은 업체가 해당 사업장을 가장 잘 알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트럭을 개조해 이동식 모델하우스도 만들었다.
김 대표는 “장기 미분양 아파트를 심폐소생술로 살려내 제 주인을 찾아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