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출범한 이후 다양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케이블 채널 시장을 독과점한 CJ E&M. tvN, Mnet, OCN, O'live 등 유수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화 콘텐츠를 이끄는 선두주자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까지 탄생하고 있는 추세다. 나영석 PD의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마마도'나 '아빠! 어디가?'를 탄생시켰고,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는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며 복고 열풍을 일으켰다.
방송가에서는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10%를 웃도는 시청률은 차치하더라도 사회적, 문화적 파장이 지상파 프로그램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능한 PD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제작 여건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다.
문화 콘텐츠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사회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케이블. 지난 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SNL코리아', '코미디 빅리그', '택시'를 이끄는 세 명의 수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온고지신'이라고 했던가. 약 38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미국 XTM 'Saturday Night Live'(이하 'SNL')을 원작으로 한 tvN 'SNL코리아'는 다섯 번의 시즌을 맞이하기까지 원조를 바탕으로 새것을 만들었다. 안상휘 CP는 'SNL'를 대한민국으로 들여온 선구자. 미국판 형식에 한국판 웃음을 가미하면서 그동안 방송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19금 섹시 유머와 병맛 코드, 통쾌한 풍자를 더해 새로운 문화코드를 제시했다.
'SNL코리아'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총괄 지휘한 안상휘 CP는 "단순한 예능은 하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와 예능적 요소가 합쳐진 'SNL'에 꽂혔다"고 말했다. KM 채널 개국 멤버로 활약하면서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뮤직비디오를 도맡았던 안 CP에게 'SNL코리아'는 매너리즘 탈피의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전통 장르가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집단 토크쇼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잖아요. 예능 프로그램이 TV가 아닌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는 젊은 세대들의 눈길을 끌려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색다른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SNL'을 만났죠."
변화와 도전을 고민하는 안 CP는 현지에서 'SNL'를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프로그램에 반영하기 위해 최근 회사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 미국 현지 'SNL'을 견학하고 돌아왔다. 실제 정치인이 출연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들이 방청객에게 조롱거리가 된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SNL코리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코치 받을 수 있었다.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신동엽 씨는 미국에 다녀온 후 완전히 달라졌죠. 조금 더 방청객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려고 하죠. 하드웨어적인 시스템도 바뀌었어요. 방청객과 더 가까워졌고, 그들의 반응 하나하나를 담아낼 수 있게 됐죠."
안 CP는 19금 코드와 정치 풍자를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해 여전히 고민했다. 'SNL 코리아'만의 날 선 색깔은 고수하면서도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고 이해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혹여 누군가가 '정치 풍자가 약하다'고 지적한다면 '누가 그래?'라고 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안 CP의 고민에 힘입어 날개를 단 'SNL 코리아'의 힘찬 날개짓을 기대한다.
일요일 오후, 안방극장에는 웃음 폭탄이 장착된다. tvN '코미디 빅리그'(이하 '코빅')가 끝나면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방송되기 때문인데, 오후 8시부터 11시까지 약 3시간 동안 시청자의 배꼽은 쉼 없이 요동친다.
1997년 KBS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후 '개콘' 조연출과 연출, '웃음충전소', '미녀들의 수다' 주요 스태프로 활약했던 김석현 PD가 tvN으로 둥지를 옮겨 기획한 '코빅'은 색다른 시도가 눈길을 끈다. 가벼운 콩트 위주로 진행되는 '개콘'과는 다르게 대결 구도를 도입했고, 1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상금을 내걸면서 경쟁을 부추겼다. 모두 '개콘'에서 갈고 닦은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전략이었다.
'개콘'과 다르고 싶었던 김 PD는 방송 3사의 내로라하는 개그맨을 총집합했다. 선후배 간의 예의는 지키되 무거운 규율은 허물고자 했고, 그 결과 10년 차 개그우먼 안영미가 나이 많은 후배에게 '야'가 아닌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김 PD는 '코빅'이 '개콘'과 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케이블 채널의 높아진 브랜드 가치를 꼽았다. 지상파 중심이었던 유통 구조가 케이블 채널로 옮겨지면서 PD 개인의 역량이 가장 중요해졌다고.
"예전에는 고시를 통해서 PD를 뽑았어요. 수백명 PD를 뽑아놓고 거기에서 잘하는 사람만 살아남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개인의 역량을 중요시하는 시대에요. tvN은 인적 인프라가 강합니다."
약 3년 동안 한 프로그램을 연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빠지는 매너리즘도 넘어야 하는 장벽이었다. '개콘'과는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보다 현재에 안주해버리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게 가장 어려운 '도전'이었다고.
"매일이 고민이에요. '당장 두 달 후에는 어떡하지?', '내년에도 잘 되려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 같은 고민은 매일에요. 심지어는 '개그맨이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한다니까요. 축구 감독과 똑같은 것 같아요. 변수에 대해 항상 생각해야 하니까요."
'개콘'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무언가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김 PD는 수 년간의 노하우를 '코빅'에 바쳤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을 담았고, 눈에는 '애정'을 가득 담았다. 간혹 지어 보이는 순박한 미소는 이 시대 최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수장에게서 엿볼 수 있는 카리스마와는 또 다른 면모였다.
2007년 9월 첫 손님을 태운 후 약 7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2회에 Ref가 출연한 이후 게스트의 도중하차는 없었다. 한 번 택시에 몸을 실으면 가슴 깊숙이 숨어있던 이야기까지 털어놓기 전에는 도어락을 풀어주지 않았던 tvN '현장 토크쇼 택시'(이하 '택시')는 개점 후 지금까지 440여 명 게스트를 태웠다.
'택시'는 도심 곳곳을 누비며 좁은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 출연자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토해내면서 그 안에서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그들이 눈물과 함께 쏟아낸 진심은 시청자에게 감동을 선사했고 오늘날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와 같은 후발 토크쇼의 창시 프로그램이 됐다.
이윤호 PD는 '택시'가 오랫동안 tvN의 간판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끊임없는 도전과 시도라고 말했다. 지상파와는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가 PD의 숨은 역량을 찾아낼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지상파라서 못하는걸 우리는 해요. 케이블은 조금 더 관대하죠. 물론 제약이 전혀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건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예요. PD가 확신을 갖고 이야기를 한다면 대부분 수용해주는 편이에요. 한마디로 '안될꺼야'라고 해서 시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공형진과 이영자가 몰았던 '택시'가 파워풀했다면, 김구라, 홍은희가 이끄는 '택시'는 잔잔한 무게가 있다. '택시'는 MC 교체와 동시에 제작진 교체로 변화를 모색했고, 조금 더 진솔한 토크의 장으로 변태했다. 이 PD는 일명 떼토크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택시'처럼 게스트 혼자 웃고 떠드는 토크쇼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고민했다.
"연예인들이 말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싶어요. 시청자들은 누가 나오느냐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스타의 스토리를 들어주려고 하는 시청자는 별로 없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있죠."
'힐링캠프'와 더불어 토크쇼의 양대산맥을 이어가고 있는 '택시'. 끝없이 고민하고 있는 이윤호 PD와 김구라, 홍은희가 운전할 또 다른 '택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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